[공정언론 창업일보]뉴스타파와 돌발영상을 만든 노종면 전 YTN 기자와 이훈기 전 인천일보 기자가 더불어민주당 인재로 영입됐다. ·

2일 더불어민주당 인재위원회(위원장 이재명 대표)는이날 오전 10시 30분, 국회 본청 당대표회의실에서 OBS경인TV 정책국장을 역임한 이훈기 전 기자(58세), YTN 디지털센터장을 역임한 노종면 전 기자(56세)를 더불어민주당 인재로 발표했다. 

이훈기 전 인천일보 기자
이훈기 전 인천일보 기자

이훈기 전 기자는 인천에 연고가 깊은 언론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1945년 인천언론의 효시인 대중일보를 창간하고 20년간 인천 언론의 주춧돌을 쌓았으며, 부친은 26년간 지역언론인으로 활동했으나 1973년 유신독재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강제 해직을 당했다. 이훈기 전 기자도 자연스레 언론인의 꿈을 갖게 됐고 인천일보 공채기자로 입사해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훈기 전 기자는 방송사유화 저지에 앞장선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98년 당시 수도권 유일의 민영방송인 iTV로 이직해 방송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iTV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던 시기, 방송사를 지렛대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려는 대주주와 방송사를 지자체장 선거캠프화 하려는 회장에 맞서 전면적인 방송사유화 저지 투쟁에 나섰다. 회장의 퇴진을 이끌어내고 방송위원회로부터 iTV 재허가 취소를 받아내는 성과도 있었으나 노조원 200여 명은 집단실업자가 됐다.

이후 이훈기 전 기자는 시청자가 주인인 공익적 민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는 2005년 ‘경인지역 새 방송 창사 준비위원회’를 꾸려 총괄책임을 맡았다. 실업자가 된 iTV 노조원 200여명의 퇴직금을 모아 방송준비 기금의 일부를 마련하고, 노조원과 함께 각종 아르바이트까지 뛰어들며 새 방송 만들기에 전력을 다한 결과 ‘OBS 경인TV’를 탄생시켰다. 이는 민영방송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은 언론자유의 상징적인 사례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그는 OBS 정책국장으로 재직하며 방송사 재허가 취소 후 직원들을 승계하는 재허가 관련법 제정을 이끌어냈고, 중소방송사에 불리한 재송신제도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며 방송정책전문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해왔다.

이훈기 전 기자가 전문성과 정책역량을 겸비한 인물로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힘써왔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언론자유 실현과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적임자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이훈기 전 기자는 정치를 결심한 이유로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의 무능과 치부를 감추기 위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방송장악을 서슴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의 일원으로서 정부의 방송장악을 막아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도 앞장서 국민의 알권리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훈기 약력및 경력사항

1965년 인천 출생 (58세)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1984) ▷청주대학교 생물학과 학사 (1991)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언론·홍보학과 석사 (2016) ▷인천일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부 기자 (’91~’98) ▷ iTV 경인방송 보도국 정치, 경제, 사회부 기자 (’98~’04) ▷전국언론노조 iTV 노조위원장/희망조합 노조위원장(’04~’07) ▷경인지역 새 방송 창사준비위원회 집행위원 (’05~’07) ▷OBS경인TV 보도국 사회‧국제팀장/인천총국장/정책국장 (’07~’20) ▷인천도시공사 이사 (’2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외협력담당관 (’21~’23.10)

아래는 더불어민주당이 밝힌 이훈기 전 기자에 대한 설명이다.

 

3대에 걸쳐 76년 간 언론인의 길 걸어온 언론 전문가

이훈기 인재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17대에 걸쳐 500년 넘게 인천에 살아왔다. 인재의 조부는 1945년 해방 직후, 최초의 지역일간지인 대중일보 창간에 기여했고, 20년간 인천지역 언론의 주춧돌을 놓았다. 부친은 대중일보를 시작으로 동양통신, 경기일보에서 26년간 기자로 활동하다가 유신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강제해직 당하기도 했다. 조부는 이승만 독재에, 부친은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며 강직한 언론인의 길을 길었다. 이훈기 인재는역시 이러한 영향으로 기자를 천직으로 여기고 인천일보를 시작으로 iTV, OBS에서 30년간 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3대에 걸쳐 76년간 지역언론을 지켜온 셈이다.

약자와 함께한 따뜻한 기자…권력엔 성역 없는 보도

이훈기 전 기자 항상 약자 편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하고, 성역 없는 보도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인천일보 시절, 김영삼 정부가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지만,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정부의 압박과 회유에 굴업도 문제를 왜곡‧축소 보도했다. 이훈기 인재는 당시 데스크 등의 압박에도 1년간 수백 건의 관련 기사를 썼고, 결국 활성단층이 드러나면서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를 이끌어내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켜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캄보디아 훈할머니를 꼽았다.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용되어, 캄보디아에 남겨져 고통받던 ‘훈 할머니’이남이 선생님을 55년 만에 한국으로 직접 모셔와 고향과 가족을 찾는데 기여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방송사유화 저지 와‘공익적 민영방송’ 설립 주도한 ‘행동하는 언론인’ 

iTV 재직 시절에는 대표이사가 인천시장 선거를 위해 방송사를 활용하려는 계획을 폭로하고 메인뉴스로 내보내 ‘시대를 앞서간 방송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방송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대주주에게 방송을 맡길 수 없다는 일념 하에 구성원들과 협력하여 시민발기인을 모집하여 OBS를 탄생시키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 방송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남아있다.

경험과 전문성 겸비한 ‘방송정책 전문가’

OBS에서는 보도국 사회팀장, 국제팀장 등을 맡았다. 국제팀장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프라임타임대 매일 30분씩 국제뉴스를 제작 방송했다. 또한 정책국장으로 재직하며 방송사 재허가 취소 후 직원들을 승계하는 재허가 관련법을 제정하는데 기여했고, 방송사 소유구조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훈기 인재는 방송통신위원회, 언론단체, 학계, 시민사회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방송통신 정책을 만드는데 기여한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공직자로서 ‘형제복지원 사건’ 등 국가폭력 해결을 위해 헌신 

이훈기 전 기자는 30여 년간의 언론인 활동을 마치고,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근무하면서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등의 과거 국가폭력 피해의 진실을 대대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고, 진실규명-법령‧조례 제정-피해자 구제라는 정책 프로세스를 실현했다. 이들 사건은 대한민국의 주요 방송과 신문 그리고 외신에 집중보도되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각 지자체가 피해자 구제를 위한 조례를 만드는 변화를 이끌었다. 2023년 12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재판에서 국가폭력에 관해 처음으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는데 기여했다. 

정권의 언론장악 저지와 ‘언론개혁 적임자’

이훈기 전 기자는 윤석열 정권 들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언론장악이라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통제기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론검열기구로 전락하고, 공영방송은 신뢰를 잃고 뉴스전문채널은 민영화의 기로의 서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은 정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고, 넘쳐나는 가짜뉴스도 언론에 대한 국민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훈기 전 기자는 이런 언론장악 시도를 저지하고 건전한 언론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 민주당과 함께 입법과 제도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 3법 재추진, 언론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법과 제도 마련,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등을 제시했다. 

또한 상대적 약자인 지역언론과 중소언론 그리고 독립언론 보호 육성 방안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왜곡된 언론정책이 정상화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종면, YTN 돌발영상 탄생의 주인공

노종면 전 YTN 기자
노종면 전 YTN 기자

노종면 전 기자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잠시 인권변호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진로에 대한 고심 끝에 언론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대학 졸업 후 YTN 공채시험에 합격해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YTN의 간판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을 탄생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돌발영상은 2003년 당초 버려지던 B컷 영상에서 뉴스를 찾아내고 정치인에 대한 권력 감시 확장을 취지로 기획됐다. 해당 코너는 정치권을 대상으로 강한 풍자와 팩트에 기반한 폭로 메시지를 잘 담아내며 파장을 일으켰고 YTN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노종면 전 기자는 이명박 정권의 해직기자 1호로 언론장악에 저항한 상징적인 인물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 MB 언론특보 출신을 YTN 사장으로 내정하는 낙하산 인사가 시도되자 YTN 노조를 필두로 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당시 노조위원장인 노종면 전 기자는 그 중심에 섰고 해고를 당하게 됐다. 그는 복직싸움을 이어가면서도 공정언론 구현을 위한 대안언론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왜곡보도를 찾아 비판하는 트위터 1인 미디어 ‘용가리(Y)통뼈(T)뉴스(N)’활동을 시작으로 뉴스타파의 초대앵커, 국민TV 뉴스K앵커 등을 역임하며 부정보도가 만연한 언론의 현실을 밝히고 기존 보도를 대체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종면 전 기자는 기나긴 해직기간의 종지부를 찍고 약 10년만에 YTN에 복직했다. 기획조정실장과 디지털센터장을 역임하며 YTN 매출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키는 등 굵직한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YTN 민영화 방침이 노골화되고 언론 길들이기가 추진되자 그는 언론인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퇴사의 길을 선택했다. ·

그간 노종면 전 기자가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에 맞서 국민을 위한 언론을 만들기 위해 일관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공정언론 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노종면 전 기자는 정치를 결심한 이유로 “윤석열 정부는 언론 시계를 1980년대로 되돌리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한 언론장악에 혈안이 돼 있다”며 “정부의 언론탄압과 퇴행을 저지하고, 나아가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한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성공적인 개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선두에 나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노종면 약력및 경력사항

1967년 인천 출생(56세) ▷부평고등학교 졸업(1986)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사(87학번)  ▷YTN 기자, PD, 앵커 (’94~’23, 이 중 해직기간 ’08~’17) ▷YTN 돌발영상 PD (’03 ▷언론노동조합 YTN지부장 (’08~’09) ▷뉴스타파 앵커 겸 PD (’12) ▷국민TV 방송제작국장 (’13~’14) ▷일파만파 대표 (’16~’17) ▷YTN 더뉴스 CP 겸 앵커 (’18~’19) ▷YTN 기획조정실장 (’20~’21) ▷YTN 디지털센터장 (’21~’23.03) ▷스픽스 TV부문 대표 (’23)

변호사의 길을 가던 모범생, 언론인이 되다

노종면 전 기자는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공부 잘하던 모범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4년 3월, ‘학교림 조성사업’에 동원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수십명이 사격장 불발탄 폭발로 중경상을 입었던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중고등학생을 강제 동원한 것도 모자라 학생들과 친구들이 중상을 입었는데도 보도가 거의 되지 않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노종면 인재는 이때의 경험이 훗날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내내 거울이 되었었다고 한다.

사법고시를 보라던 아버지의 권유에 노종면 인재는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대학 졸업 후 언론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994년 YTN 공채 시험에 합격해 언론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YTN에서 얻은 돌발영상의 영광, 해직이라는 성장통

YTN 재직할 때 얻는 별명은 ‘노돌발’. 2003년 돌발영상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버려지던 B컷 영상에서 뉴스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돌발영상은 보도 영역을 확장한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그 대상이 주로 정치인이기 때문에 권력 감시 영역도 확장됐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돌발영상의 편집 기법은 20년이 지난 지금 보도 영상의 주류가 되었다. 기자와 보도PD, 앵커를 두루 거친 노종면 인재가 스스로 돌발영상을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들이다.

YTN은 그에게 이명박 정부 해직기자 1호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그러나 노종면 인재는 위기를 기회로, 해직을 성장통으로 만들었다. 해직기자로 지낸 9년간 노종면 인재는 ‘공정 언론’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래서 그는 해직의 단초가 되었던 2008년 노조위원장 입후보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조금도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종면 인재의 씨앗들은 뉴스타파와 국민TV로 이어졌다.  

뉴스타파, 국민TV, 그리고 일파만파

노종면 인재가 YTN 해직에 맞선 전술은 간명하고 선명하다. 언론인의 정체성 유지. 그는 이 전술을 2017년 복직할 때까지 놓지 않았다. ‘공정 언론’을 외친 그였기에 ‘공정한 언론인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체화해야 했다고 기억한다. 2011년 왜곡 보도 찾아 비판하고 중요한 기사 요약해 알리는 SNS 활동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탄압의 표적이었던 MBC PD수첩과 YTN 돌발영상을 되살린다는 취지로 MBC 이근행 PD와 뉴스타파를 만들었다. 노종면 인재는 뉴스타파라는 이름을 짓고 앵커를 맡으며 돌발영상 시즌2로 ‘공갈영상’을 제작했다. 2014년에는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의 방송제작국장을 맡아 데일리 종합뉴스를 표방한 뉴스K를 제작하고 진행했다.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2016년에는 4천여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가 시민편집단으로 참여한 ‘일파만파’라는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부실하거나 부정한 보도가 판치는 언론 현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내고, 기존 보도를 대체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함으로써 ‘대안 언론’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그의 걸음은 일관됐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통해 더 확고해진 노종면의 언론관은 ‘언론은 시민사회를 위해 존재하고, 시민사회의 견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맞닿아 있다.

복직 그리고 퇴사, 본질은 ‘언론 견제’ 

‘시민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은 노종면 앵커가 YTN 복직 이후에도 내내 붙들고 있던 과제였다. 해법은 명확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합리적이고 강력한 견제를 제도화할 때 비로소 언론이 시민사회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고 이해했다. 누구보다 언론계 내부를 치열하게 경험한 그는 ‘악의적 오보에 대한 징벌적 손배’와 같은 제도가 법률로 도입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도 강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환경은 더욱 안좋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언론 시계를 1980년대쯤으로 돌려놨기 때문에 ‘언론 견제’는 의제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언론계 내부는 ‘언론 견제’를 고민할 여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을 이겨내는 것은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그 결과는 원상회복이다. ‘언론 견제’는 언론 제도의 진보, 나아가 언론의 실질적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가 ‘언론 견제’를 포기할 수 없는 언론개혁의 제1 과제로 보는 이유이다.

‘시민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 시민사회의 견제 아래 있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언론인 노종면’은 힘껏 싸워왔다.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시민 노종면’, ‘정치인 노종면’으로 그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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