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9일 반도체 재벌특혜 양당합의와 관련해 "최악의 입법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엊그제부터 언론을 통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기재위에서 심의중인 반도체 시설투자세액공제 15% 확대안에 야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 '묻지마 반도체 특혜법'에 반대해온 국회의원으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지금 기재위에 상정돼있는 ‘묻지마 반도체 특혜법’은 작년말 통과시킨 8% 공제율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를 15%로 상향하겠다는 막무가내 요청이다. 작년 말이나 지금이나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달라진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기류 뿐인데 그 기류변화에 맞춰 기재부와 여당은 물론 거대 야당인 민주당까지 논리적 일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하고 장단을 맞추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특히나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인 민주당은 추경호 부총리의 사과 한마디로 국민혈세 3조 4000억원을 들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를 감면하는 특혜법안을 받아주겠다고 나선 것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수진 의원과 김태년 의원은 지난 상임위에서 15%로 되겠느냐, 더 올려야 하지 않겠느나며 한술 더 뜨기까지 했다. 오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협력에 깊은 감사의 뜻을 밝혔다. 국회앞 현수막으로는 그렇게 서로를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지만 재벌 감세 부자 감세 앞에서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되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감세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통합투자세액공제 제도는 문재인 정부가 처음 도입했고 집권기간 내내 그 감면 대상과 감면폭을 계속 확대해왔다. 작년 세법개정 때에도 민주당은 결국 윤석열 정부의 대기업 자산가 감세에 찬성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민주당의 부자 감세 야합 이전에 민주주의의 문제다. 정부는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 입법부의 합리적 정책판단의 근거가 될 최소한의 자료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장 의원은 "삼성전자 실효세율이 몇 퍼센트인지, 반도체 설비투자액이 얼마인지, 세액공제와 설비투자액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정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2022년 12월 24일에는 세계 최고의 세제혜택을 주는 나라였는데 2023년 1월 3일에는 그렇지 않은 나라가 된 것인지, 이 어려운 시기에 세수감소는 또 어떻게 메울 것인지 아무런 실증적 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이런 행태는 그야말로 입법부를 통법부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런 행태를 그냥 놔두고 여당은 물론 압도적 제1야당인 민주당까지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것은 입법부의 법안심사권한을 스스로 형해화하며 입법부를 통법부로 전락시키는 민주주의 자해행위"라고 비난했다. 장 의원은 이와 관련 2가지 주장을 덧붙였다. 아래는 그 요약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15% 투자세액공제가 효과적 대응인가?

산업정책의 측면에서도 지금의 법안은 설득력이 없다. 지금의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우위에 서기 위해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과연 15% 투자세액공제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와 양당에게 묻는다. 15%의 투자세액공제만 되면 한국이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가? 이미 작년에 기재부가 실토한 바와 같이 현 8% 세액공제로도 대한민국의 세제혜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은 세액공제가 없고 설비투자에 대한 보조금으로 균형을 맞춘다. 일본과 대만의 세제혜택은 한국에 비해 부족하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조금이나 세제혜택 규모 그 자체가 아니다. 현재 반도체 설비투자는 세금혜택보다는 지정학·시장상황·제조업생태계의 경쟁력, 기업전략이 결정적인 변수이다.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고 인건비도 싼 중국에 왜 모든 투자가 몰리지 않는가? 인건비·세금·사회보장부담이 훨씬 높은 유럽에 반도체 신규투자가 있는 이유가 단지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 때문이겠는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산업지원법의 지원액은 분명 파격적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보조금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노심초사이다. 한국 반도체의 최대 고객으로 막대한 설비투자가 이미 진행된 중국에 대한 가드레일 조항, 기업기밀자료 보고 등의 조건이 기업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법 문제는 이미 단순한 보조금 규모경쟁을 넘어서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의 셈법인 것이다.

<플라자 합의> 수준의 대격변이 예고된 여건에서 다양한 요소의 신중한 비교와 분석을 하는 대신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뛰는 식으로 하는 도박적인 세금감면은 국익을 위한 결정일 수 없다. 15% 투자세액공제를 주장하며 기재부가 내세우는 말도 안 되는 논리들 몇 가지를 반박하겠다. 먼저 반도체 경기가 나쁘니 세액공제를 해 줘야 한다는 당황스러운 논리다. 물건이 안 팔리는데 세제혜택을 준다 한들 설비투자를 늘릴 이유는 희박합니다. 어차피 기업의 실적이 나쁘면 법인세를 내지 않게 되고 적자분은 이월공제까지 해 준다.

이미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추후 돌려받을 세금 액수를 늘려준다 한들, 이 시점에 투자를 더 하겠는가? 반도체 경기가 호황이던 지난 2년간에도 정부와 양당은 끊임없이 세액공제 확대를 밀어붙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호황이면 호황이라고 감세, 불황이면 불황이라고 감세인 것이다. 이번 투자세액공제가 부자감세,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 기재부는 세금감면이 삼성과 하이닉스만이 아니라 1400개 중소·중견 반도체기업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 주장이 성립하려면 먼저 세금감면이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는 불확실하다. 게다가 대기업 팹 설비투자 중에  국내 장비기업 매출과 관련이 있는 것은 20% 뿐이다. 투자효과도 불확실한데, 투자증가의 혜택마저 외국기업이 대부분 가져간다는 이야기이다. 삼성의 이익 증가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지니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도 살펴보겠다.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이익은 대부분 대주주와 외국인투자자, 성과급 혜택이 큰 상위직급 임직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비중을 줄이는 중이고,연금 가입이 어려운 저소득층과 불안정노동자들은 여기에서도 배제된다. 수조원의 세금감면분은 다른 국민들이 더 많은 부담으로 메우거나 복지와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혜택은 특정 소수에게 집중되고 이 혜택을 위해 다수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것,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지금 이 시점에 반도체 전쟁 국면을 헤쳐나가기 위해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먼저 RE100의 국내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공급할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후 공급망 참여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RE100과 상관없는 원전 확대를 내세우며 거꾸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앞으로 더욱 시장이 확대될 시스템 반도체 영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1등 기업뿐만 아니라 팹리스와 파운드리에서도 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전략기술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 업체들은 지원에서 배제되고 역량을 키울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다. 기껏 개발한 기술은 대기업에 의해 탈취당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이에 대한 가드레일도 필요하다. 국가의 대규모 투자의 결실로 얻어진 경쟁력 있는 기업의 수익이 결국 모든 시장 플레이어들과 납세자들에게 분배될 수 있는 이익공유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구성원들이 국가의 기업지원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계획은 그저 1등 퍼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부는 진짜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아둔 채 오로지 세금감면에만 집착하고 있다. 지금의 반도체 전쟁 상황에 국가의 역할에 대해 저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미국도 중국도 하는 세금감면, 우리도 화끈하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K-칩스법'이라는 허울 좋은 대기업 특혜감세법은 그 방법이 아니다.

최소한의 합리성과 실증 데이터도 갖추지 못한 이 법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담보해낼 수 없을뿐 아니라 위기를 핑계로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대통령실 하명입법일 뿐이다. 이런 법안을 선선히 통과시킨다는 것의 의미를 대한민국 국회는, 여당은, 민주당은 깊이 되새겨야 한다. 민주주의의 형해화와 합리적 의사결정의 실종, 재벌특혜의 제도화와 국회입법의 무력화까지, 최악의 선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것은 구국의 길이 아니라 망국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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