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창업소설] 지식창업이야기

"구조조정됐던 회사는 기사회생하여 매출 2000억을 찍고 있었다"
"구조조정됐던 회사는 기사회생하여 매출 2000억을 찍고 있었다" 

[창업기획소설] "구조조정됐던 회사는 기사회생하여 매출 2000억을 찍고 있었다" 지은이 권영석. 한성대 융복합 교양학부 교수. 한국지식창업연구소장, 성북구 시니어기술창업 센터장, 시니어창업교육총괄책임자 등을 역임했으며 벤처경영학 박사이다. [편집자 주]

 

<지난회에 계속>

김전무와의 다섯 번째 만남은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매일 은행나무 옆 공터에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지식창업을 책 쓰기로만 생각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식창업이란 개념도 없었다.

늦가을 오후였다.

공원을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김전무와의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공터로 향했다. 빨간 이층버스가 서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궁금했다. 아무 말없이 떠날 리가 없었다. 전화를 했지만 고객의 사정으로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울려 나왔다. 페이스북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홈페이지는 이따금 활동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냈지만 ‘남해 투어중’이라는 답변만 날아왔다.

나는 김전무를 잊었고 바쁘게 생활했다.

SNS마케팅 교육을 받았고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동할 때나 누구를 기다릴 때,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 전철을 기다릴 때 등 수시로 짧은 콘텐츠를 작성하여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이를 다시 페이스북과 카페에 공유했다. 교육 프로그램도 고객의 니즈에 맞게 세분화하여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단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 고객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추가로 저렴한 비용에 1:1 코칭을 했다. 신규 회원 모집을 위해 세미나를 열었고 고객들에게는 수시로 이메일 매거진을 보냈다. 신규 고객들이 추가되었고 기존 고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개설했다.

수입창출 선순환 시스템은 점점 정착되기 시작했고 매출은 수십배로 증가했다. 책을 출간하자 인지도는 올라갔고 새로운 고객들이 카페에 기입했다.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고객을 끌어 들였다. 김전무가 제시한 성공모델을 통하여 나는 작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1년 후에 나를 구조조정했던 기업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영희씨도 와있었다. 반가웠다. 기업은 기사회생하여 매출이 2천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자본잠식으로 폐업할 위기를 맞았던 기업을 김전무가 살려서 성장시켰다는 소문들이 돌았다. 세계적인 IT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는 구조조정 당한 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벤트를 열었다.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추천장을 받아서 이벤트에 참여했다.

구조조정 당한 이팀장은 복귀하여 고객서비스팀 전무가 되어 있었다.

그는 결재처리를 아무리 늦어도 한나절을 넘기지 않았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 어려운 결정이라도 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의 책상은 항상 빈둥대는 서류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서랍이 없는 사무책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연립주택 집을 팔고 옆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갔다.

치킨집을 차렸던 신과장은 가게를 접고 다시 회사에 복귀하여 경영전략실 이사가 되었다.

가게를 오픈하고 초기 몇 개월은 장사가 그럭저럭 되었다. 아파트 단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장생활보다 수입이 좋았다. 장사가 잘되자 배달직원을 두명까지 두었다. 하지만 골목을 중심으로 치킨가게가 4개나 들어섰다.

경쟁이 치열했다. 매출은 점점 줄어들고 이익도 급속이 줄어들어 배달직원도 내보냈다.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14시간을 아내와 둘이 치킨을 튀기고 배달을 했다. 세 번째 가게는 새벽 2시까지 했다. 과로가 누적되어 몸은 점점 망가져갔고 마침내 쓰러져서 입원하여 병원에서 4일을 보냈다. 그리고 가게를 접었다. 

영희씨는 회사의 대표 주주가 되었다.

김전무는 딸이 브이컴에 들어와서 기술부문을 맡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권유를 고사하고 그로부터 브이컴 주식의 반을 양도받아 대주주로 남았다.

김전무는 마이컴이 위기를 맞았을 때 휴지가 돼버린 주식들을 대부분 다시 사들였다. 그는 주주겸 대표가 되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투신했다. 그 과정에서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과로하여 심근경색과 위암을 얻었다.

김전무에 대하여 소식을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을 잊었다. 그는 쓰러져가는 회사를 위해서 너무 열심히 일한 탓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얘기였다.

"이미 1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버지는 선생님과의 만남을 끝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곧바로 돌아가셨어요. 실은 선생님을 만날 때 위암 말기였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께 드리라고…. 도움이 될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작은 봉투에 담긴 것을 건네주었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당시는 무척 정정해 보이셨습니다."

"네. 물론 그랬어요. 구조조정으로 떠난 직원들을 돕기 위해 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셨지요. 선생님이 구조조정 당한 분들중에 마지막으로 만나신 분입니다. 아버지는 퇴직한 분들을 모두 만나서 회사로 복귀시키거나 그분들이 하시고 있는 일들을 도우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을 만나서 반드시 도움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이어가셨어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지식창업 성공모델을 만드셨어요. 그게 선생님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선생님을 꼭 만나야 되겠다는 이유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아픔보다는 모든 것을 마무리 하셨다는 행복이 크셨지요"

"그게 지식창업가의 기업가정신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그 정신으로 회사를 이끌어 오셨어요. S/W 개발도 지식창업이지요. 지금은 경영전문가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치 김전무가 영업팀장에게 당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김전무가 내게 남긴 것은 손톱만한 USB였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파일에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대부분은 김전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기형태로 쓴 내용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 둔 후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치고 6개월을 쉰 후에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파산할 경우 그의 손실이 제일 컸다. 주주들이 그를 불러들였다. 그들의 희망은 회사를 빨리 정리해서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 책임을 대주주인 그에게 맡겼다.

그가 대표로 회사에 복귀했을 때 통신사업부 직원들은 대부분 퇴사를 한 상태여서 두 개의 사업부 중에 하나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건축설계S/W사업부의 고객유지 보수팀은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프로그램은 미국 시카고의 설계회사에서 개발하여 공급했다.

마이컴은 미국 본사의 프로그램을 한국의 설계회사들에 독점 공급하고 단순한 유지보수업무를 통하여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300여명의 직원들은 40여명정도만 남았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대다수가 이직할 곳이 없는 직원들이었다. 

떠날 직원들은 모두 떠났다. 

김전무는 복귀하자마자 직원들의 강점과 성격유형, 버킷리스트 등을 분석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했을 때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그의 성격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팀원들과 면담도 했다. 그는 팀회의에 참석하여 조용히 듣고 앉아있기만 했다.

눈치 빠른 관리자들은 그가 절망했다고 느꼈다.

김전무는 직원들에 대해 몇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팀별 문제점 해결에 대한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회의시간은 길었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업무 실책에 대해서 개선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으로 여겼고 회의가 끝나면 감정의 앙금이 남아 적이 되었다.

회의는 근본적인 원인파악이나 문제제기 보다는 자기방어에 급급한 감정의 싸움이나 논쟁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것을 커다란 두려움으로 느꼈다. 충돌을 피하려는 두려움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했다. 변명 만들기에 급급했고 문제의 핵심은 회의를 할수록 양파껍질 속처럼 더 깊숙이 파묻혔다.

회의 결과에 협조하겠다는 동의와 사인을 했지만 회의를 성과있게 마무리했다는 수단이었다. 회의는 회의로 끝이었고 개선된 결과는 없었다.

열정과 노력으로 열심히 하면 바보 취급을 당했고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회사의 실적하락을 당연하게 여겼고 무관심했으며 반면 개인의 경력이나 비난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 특징들은 망하는 기업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김전무는 고민했다.   

그들은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다.

자신의 일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치창출을 위한 신뢰와 공동체 감각은 없었다. 유지보수업무는 진정으로 고객을 위해서 가치있는 일이었지만 직접 가치를 창출하는 일은 바다건너 미국 본사에 있었다.

그는 10일 이상을 사무실에서 칩거한 채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총무팀장이 불려가곤 했다. 식사는 주문해서 넣어 주었다. 그는 출퇴근도 하지 않았다. 밤늦게 회계팀 직원이 우연히 복도에서 그를 봤는데 완전히 도인이 된 모습이었다.

수염은 길게 자라고 머리는 감지않아 엉클어져 있었지만 눈빛은 단식을 하는 사람처럼 빛났다. 김전무는 퇴사한 이팀장이 하던 업무를 꼼꼼이 분석했다. 한때 그의 경쟁자인 동기를 그 팀에 오래도록 묶어 두었다. 그가 전무로 승진할 동안 이팀장은 차장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유지보수팀에 있었다.

마침내 칩거를 끝내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가 어떠한 계획과 목표를 세워도 시간이 부족했다. 직원별 분석결과와 면담을 통해서 3명의 직원을 부서에서 차출했다. 그들은 실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적극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불만투성이에 괴팍한 면이 있는 직원들이었다. 특히 가장 발전도 없고 기술도 없고 가치도 없다고 느껴 직원들이 일하기를 꺼려했던 부서인 고객유지보수팀의 업무처리와 직원들을 꼼꼼히 보았다. 이팀장이 오래도록 맡았던 부서였다. 경영전략팀과 회계팀, 영업팀같은 핵심부서들은 속으로 그들을 멸시했다.

특히 영업에서 승승장구했던 김전무는 유지보수팀을 매출만 까먹는 밥버러지 집단이라고 노골적으로 멸시했다. 사내 직원들은 유지보수팀을 콜센터 직원이라고 불렀다.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받아 기록하고 처리해주는 단순 업무였으므로 그럴 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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