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승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목표는 승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 권영석
  • 승인 2020.09.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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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창업소설] 지식창업이야기

"목표는 승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마이컴에도 구조조정이 몰아닥쳤다. 팀에 반 정도의 인원이 명퇴를 당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 팀은 모두 6명이었다. 3명이 구조조정 대상이다. 이차장과 신과장이 경쟁자였고 정대리와 3년차 근무자인 내가 경쟁이었다. 팀의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는 막내인 영희씨는 이미 구조조정이 확정되었다.

1년에 실직자가 수백만 명씩 쏟아져 나온다. 직장인들은 감원태풍을 맞고 있다. 이들 중 재취업자는 10%도 되지 않는다. 수백만명 중에 대부분은 실직상태로 있다가 치킨집이나 편의점, PC방, 셀프 빨래방, 프랜차이즈, 음식점, 빵집이나 피자집 등을 개업한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없는 창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창업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자 주]

내가 일하는 유지보수팀은 회사 내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전국의 수많은 고객사로부터 건축설계 프로그램 사용에 대한 보수 요청이 오면 문제를 접수받아 협력사에게 전달하고 수정된 프로그램을 검증하고 해결여부를 확인하는게 주 업무였다. 그래서 다른 부서직원들은 유지보수팀을 콜센터라고 불렀고 팀원들을 콜센터직원들이라고 불렀다. 신과장은 승진하면서 우리 팀으로 왔다. 그는 유지보수팀이 단순히 콜센터역할만 할게 아니라 팀을 만들어 직접 설계프로그램을 개발하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이팀장은 이 주장에 매번 반대했다. 일을 잘 추진하지 않는 이팀장은 회사내에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혔고 신과장은 명문 S대에 추진력까지 있었다. 이차장이 팀장으로 있는 동안 팀은 사기가 떨어졌고 회사내에서 비전도 없는 팀으로 여겨졌다. 회사가 신과장을 우리 팀으로 보낸 것도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차원이었다.

이팀장과 신과장은 의견차이로 매번 부딪쳤다. 하지만 이 의견대립보다 더 무서운 칼날이 외부에서 날라들었다. 팀에 구조조정의 칼날이 날아들자 분위기는 지옥처럼 변했다. 신경들은 예민해지고 업무들을 비밀스럽게 처리했다. 이차장은 유지보수업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해야할 천직이라고 여겼다. 그는 유지보수팀이 크는 것도, 때에 맞춰 승진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적당히 늦게 승진하면서 팀장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 그의 소명이었다. 이차장의 동기는 이미 전무까지 승진했다. 신과장은 이번에 차장 승진대상 1호였다. 하지만 회사가 구조조정하는 마당에 승진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목표는 승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마이컴은 매출 500억원을 기록하는 IT기업이다. 매년 10%대의 성장과 30억원대의 흑자를 남겼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흑자도산을 불러왔다. 사실은 경영권자의 잘못된 정책으로 회사가 갑자기 어렵게 되었다. 마이컴의 대주주는 매출 3천억 정도를 하는 중견기업인 A기업이었다. A기업의 이사들이 마이컴의 대표와 이사직을 겸하고 있었다. A기업은 잘 나가는 마이컴의 자본금을 담보로 500억원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았다. 하지만 돈만 잡아먹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한번 침몰하기 시작한 IT기업은 회생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 후에도 A기업은 발행어음 300억원을 마이컴이 배서하도록 했다. 불어 닥친 금융위기가 A기업을 완전히 도산으로 내몰았다. 그 빚은 모두 마이컴이 떠안았다. 그것은 신용등급이 'A'인 마이컴을 하루아침에 C등급 이하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컴은 A기업이 경영권을 인수한지 2년도 안되어 800여억원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미 완전자본잠식상태였다. 경영권을 A기업이 인수하기 전에는 매년 이익금을 무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으로 전환했다. 자본금이 6백억으로 늘어났지만 8백억원의 빚을 갚는다면 자본금은 모두 까먹는 상태가 된다. 그 여파로 핵심고객인 K대기업이 신용등급 B 이하인 기업과는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사내 규정을 들어 거래를 끊어 버렸다.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가 협력업체의 도산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사내규정은 단호하고 강력했다. 몇몇 건설대기업들이 비슷한 이유를 들어 거래를 끊었다. 그들은 모두 매년 거의 300억원 이상의 매출실적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 여파로 마이컴은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개 구조조정은 사원들의 실수나 실적보다는 외부의 여러 가지 위험요인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 월급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한 직원들만 희생자가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복도에 있는 초록 게시판에 퇴직대상자의 이름이 걸렸다. 직원들은 일을 하려고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대상자의 명단을 보기위해 출근했다. 이름이 걸린 직원들은 조용히 짐을 싼 채 사라졌다.

우리 팀의 퇴직대상자는 명확했다. 팀장인 이차장과 나였다. 이차장은 리더십 부족과 눈에 띠지 않는 실적이었다. 맡겨진 업무는 잘 해냈지만 그것은 눈에 띠지 않았다. 윗사람의 눈에 띠는 일은 새로운 일을 찾아 추진하는 것이다. 월급의 속성은 항상 더 많은 과외의 실적을 요구한다. 당연히 중소기업에서의 승진은 과외실적이 높은 자가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승진을 앞둔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역시 대리 대상자로서 맡겨진 일은 열심히 했지만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실적이 형편없었다. 그 책임은 일부 내게도 있었지만 이차장의 업무 스타일도 영향을 미쳤다. 업무 4년차로 초기에는 대리로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새로운 일을 찾아 기안을 자주 올렸다. 하지만 곧 학습된 무능력에 빠졌다. 이팀장은 신규 기안의 결재를 항상 3일 이상 서랍 속에 묻어두었다. 그는 동기이자 직속상사인 김전무에게 결재 올리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김전무는 사내에서 폭군으로 통했다. 같이 입사했지만 한사람은 전무였고 한사람은 팀장인 만년 차장이었다. 김전무는 탱크같은 추진력으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결재 검토 중에 머뭇거리거나 한번 꼬투리가 잡히면 그때부터 재떨이며 쥐고 있던 볼펜이며 결재판은 물론 책상위에 놓인 노란 튜울립 꽃병마저 던져 산산 조각냈다. "월급 거렁뱅이같은 놈들, 이따위 기안을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처먹어!" 기안을 검토한 지 10초도 안돼 이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그것은 폭군으로 변하는 신호였다. 분노에 찬 언성이 건물 2개층을 쩌렁쩌렁 울리면 사무실은 순식간에 얼음장이 되버렸다. 그 소리를 듣는 직원들은 사고와 기억과 감정들이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검토해 봤는데 진행은 해야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란 생각이 들어.” 이차장은 직원들의 기안을 번번이 묵살했다. 그는 죽은 듯이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7년차 만년 차장인 이유다. 그는 직원들이 올리는 기안을 책상서랍 속에 매장시켰다. 밤을 새서 신규 안을 작성해 올려도 이팀장의 서랍속에서 매장되는 것을 나도 여러 번 경험했다. 그 후로 나는 주어진 일만 했다. '열심히 해서 올려도 결재가 안 나는데 무어라 밤새 기안을 작성해.' 라는 생각이 무의식속에 자리 잡았다. 월급쟁이에게 이것은 무서운 병이다. 이것이 학습된 무능력이다. 좌절이 반복되면 더 이상 새로운 일들을 추진하지 않는다. 이 병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회사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모든 생활에 이 생각을 적용시켜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학습된 낙관주의가 있다. 유능한 리더는 직원들에게 학습된 낙관주의를 심어준다. 직원이 기안을 올리면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친절하게 코치를 한다. 그는 직원들을 위해 격려와 도움과 응원을 해주는 치어리더의 역할을 한다. 처음 올린 기안은 리더의 지식과 경험을 거치면서 치밀해지고 구체적이 되어 이사들의 최종 승인을 받는다. 긍정적인 일들이 반복되면 팀의 성과도 좋아져 예산 규모도 점점 커진다. 새로운 팀을 만들어 승진자도 많게 된다. 이러한 리더의 밑에 있는 직원들은 학습된 낙관주의로 무장하여 무섭게 성장한다. 학습된 무능력을 가진 나는 당연히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다. 이팀장은 인사팀을 통해 자신이 구조조정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팀 술자리에서 몹시 괴로운 듯 스스로 폭음했다. 이팀장의 양복 윗도리와 가방은 내가 챙겼다. 신과장은 택시를 잡아주며 내게 주소와 약도를 말해주었다. 

"자네도 대상이야."

팀장은 나와 둘이 남게 되자 내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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