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물건은 만들어내면 된다. 아주 경제적인 방법을 택해서.

남원 변사도의 집 부흥식도 대장간에서 식칼의 명성을 이어가는 여성 대장장이 정길순 씨가 칼을 다듬고 있다. 사진=한국보도사진가협회 김철호 부회장 제공.
남원 변사도의 집 부흥식도 대장간에서 식칼의 명성을 이어가는 여성 대장장이 정길순 씨가 칼을 다듬고 있다. 사진=한국보도사진가협회 김철호 부회장 제공.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와 그 옆에서 잠시도 쉴 새 없이 풀무질을 하는 이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대장장이의 품새는 지나는 이의 발걸음 잡기에 충분했다"

호미와 낫을 기계로 만들어 낸다? 대장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전래의 농기구도 사라지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제2의 전성기니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인가?  어찌됐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낫과 호미는 우리 민족과 뗄 라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꼴도 베고 벼도 베고, 나뭇가지도 치고, 그야말로 낫 한 자루만 있으면 만사형통이었다. 호미는 우리 밭농사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필수품. 그 생김새가 아주 과학적으로 고안되어 있어 좁은 이랑의 밭을 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낫과 호미를 만들어 내는 대장간은 항상 북적였다.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와 그 옆에서 잠시도 쉴 새 없이 풀무질을 하는 이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대장장이의 품새는 지나는 이의 발걸음 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불끈불끈 솟은 근육을 자랑하며 망치질을 할 땐 뜨거운 열기마저 잊는다고 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쉼 없이 두드리는 과정은 이 대장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백미. 달구어서 두드리고 다시 달구는 작업의 반복 속에서 쇠는 비로소 강한 철로 변한다. 적당량의 탄소가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특이하고 기발한 기법이다. 이렇게 단련된 쇠는 장인의 손에서 연장의 모습을 갖추고 날을 벼르게 된다. 그리고 연장의 날 부분을 물에 살짝 담 구어 더욱 강하게 만들면 모든 과정은 끝.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제 구실을 하는 연장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연장이 태어나는 과정이 복잡하다보니 이를 만드는 장인 기술을 숙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진정한 대장장이로 구실을 하자면 적어도 10년 이상 기술을 닦아야 한다니 정말 장난스럽게 넘길 수 있는 수위가 아니다.

이러니 아무리 전통이 좋고 장인정신이 좋다한들 대장장이에 종사하겠다는 이들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최신컴퓨터도 속도가 느리다고 신제품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낫을 만들기 위해 10년을 배우라 하면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또 낫이나 호미 등의 우리 전래의 연장과 농기구 들은 포기해 버리기엔 너무 쓸모가 많다. 성묘의 벌초 작업이나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협소한 지역의 관리에 필수품인 동시에 휴대하거나 보관하기에 편해서 이 이상 가는 기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이해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답은 단 한 가지, 필요한 물건은 만들어내면 된다. 아주 경제적인 방법을 택해서. 이 경우에는 전통수호니 장인정신의 발로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수식어는 없애도 좋다. 그저 필요하니까, 쓸모 있으니까, 장점을 최대한 살려 만들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결론이다.

호미와 낫의 제조공정의 비밀은 앞서도 말했지만 달구고 두드리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강한 철. 이 문제는 복합강재를 사용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나머지는 지극히 간단하다. 기계를 이용하여 적당한 각도로 굽혀 날의 등 부분에 통을 형성하고 열처리를 하면 일단 반은 완성된 셈이다. 마지막으로 날을 세우는 과정을 수작업으로 해서 품질의 완성도를 높인다면 훌륭한 연장이 탄생된다.

이 경우 하루에 생산 할 수 있는 완제품의 수는 수백 수천 개. 이것은 대장장이 귀신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만큼 엄청난 양. 인류 대장장이가 평생 밤낮을 매달려 만드는 양과 맞먹는다. 그뿐이랴? 힘들게 풀무질을 할 필요도 없고 팔이 떨어져라 망치를 휘두를 필요도 없다. 대장장이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근육질도 필요 없다. 붕어빵 만들듯이 호미와 낫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 된다면 가위와 칼 사듯이 슈퍼에서 낫과 호미를 살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

전래되어온 장인 기술이 사장화의 위기에 처한 것은 그 기술이 쓸모없어 라기 보다는 채산성의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

호미와 낫의 경우처럼 제조공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여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술의 전수는 고사하고 전래의 기구들이 박물관의 전시실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품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그러나 기계화는 이 문제점을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공정을 기계에게 맡김으로써 인력과 시간을 동시에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대량생산은 물론이고 규격화된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전통문화를 보전하자는 높은 목소리에 실천적으로 동참하는 길도 된다. 청소하고 돈 줍고, 미팅하고 점심 해결하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의 멋진 상품. TV의 특별 방송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은 대장간의 낭만은 없다 해도 이 정도면 꽤 쓸 만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또 다른 세계에의 도전. 기계와 인간의 협력, 현대와 전통의 조화라는 거창한 제목이 어울릴만한 새로운 분야, 장인기술의 기계화가 그것이다.

글 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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