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라고 하면 다문화를 비롯해 모두가 함께 즐기거나 누리며 살아가는 것들을 포함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문화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예전에야 김치가 한국요리로만 알려졌지만 일본인들도 ‘기무치’를 먹는다. 그리고 얼마 전 찾아간 독일 중부의 로만틱가도에 있는 작은 도시 안스바하의 구석진 동양 식료품점 집에도 우리 ‘김치’가 있었다. 그 김치를 찾는 고객 가운데는 독일주둔 미군은 물론이고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인 그리고 한국 유학경험이 있는 독일인 경찰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 등 다양하다.

독일 슈퍼마켓에는 우리나라에서 직수입한 한글로 포장된 김치도 있지만 일본에서 만든 ‘기무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김치이지만 먹는 사람들은 이것이 대한민국의 음식문화라는 것을 알고서 먹을까? 안다고 해도 그게 정말 맞는 말일까? 우리 맛과 다른 일본 ‘기무치’는 발효가 잘 안 돼 있고 달콤한 맛이 강하다. 그런데도 김치일까?

독일인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김치를 아는 사람도 있지만 취향이나 선호도는 다르다. 일본의 ‘기무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독일인들은 언제까지 김치를 한국 음식이라고 기억할까? 근래 외국 기사를 보면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 김치는 보편화하고 대중화돼 있다. 일부 중국인과 일본인은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먹는 반찬이 됐다. 기호식품이 아닌 생활 식품이 됐다. 그런 그들이 언제까지 ‘김치’를 한국 음식으로 기억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은 ‘김치’를 한국 음식이 아닌 자기 나라 음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보이차 가공하는 모습.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식탁에 전 세계 농산물이 올라오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농산물만을 고집하기에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배추나 고기 등 원산지 표시를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쉽지 않다. 우리 땅에서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그것이 바나나나 파인애플처럼 원래부터 수입된 것이라면 외국에서 먹는 ‘김치’처럼 얘기는 참 많이 달라진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라는 말에 고유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게 됐다. ‘우리 고유’가 가진 ‘우리만’의 라는 소집단적 폐쇄성보다는 ‘우리 모두’라는 범 집단적인 개방성이 더 다가오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보이차는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옛 서책인 부도지(符都誌)에는 우리 조상들은 마고성(麻姑城)의 땅에서 나오는 이슬처럼 맑은 지유(地乳)를 먹어 혈기를 맑게 했다고 한다. 음식을 먹다 보면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등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음식은 먹을 때는 안 그런데 뒷맛에 마치 우유같은 ‘젖’맛이 나는 것이 더러 있다. 우리의 ‘김치’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입속 가득히 여운이 남고 고소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젖맛은 참으로 대단하다. 김치만 그런 건 아니다. 햇볕에 말린 고춧가루에서도 젖맛이 난다. 보이차가 특히 더 그렇다.

보이차의 산지는 중국에서도 우리 국적기가 취항하는 윈난성 쿤밍 남쪽에서만 난다. 시솽반나(西雙版納)라고 하는 중국 최남부인 이곳은 우리에게 ‘삼국지’로 잘 알려진 한나라 때 제갈공명(181~234)이 차를 따고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는 곳이다. 서솽반나를 가로지르는 란창강(라오스나 미얀마에서는 메콩강이라고 부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혁등(革登), 의방(倚邦), 망지(莽枝), 만전(??), 만사(漫撒),이무(易武), 유락(攸?, 현재의 基?) 등의 고 6대 차산이 있다. 서쪽으로는 남나산(南?), 남교(南?), 맹송(?宋), 경매(景?), 포랑(布朗), 파달(巴?)의 신6대 차산이 있다. 지유명차에서 산 ‘04파달숙병’이라고 하면 파달산에서 2004년에 만든 숙차로 떡처럼 둥글게 긴압(緊壓)한 차를 말한다.

이 지역에는 청대에 황실에 공납하는 차로 지정된 곳도 적지 않은데 1950년 이전까지 복원창호(福元昌號), 동경호(同慶號) 등 호자급(號字級) 보이차들이 유명했다. 아직 지유명차에서 판매하는 ‘차순호’ ‘낙생호’ 등 호자급 보이차들은 황실에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차라는 뜻에서 차창들이 내놓은 것이 된다. 차의 고장인 이곳에는 중국 한족이 아닌 많은 소수민족이 산다. 특히 이 부근에 사는 소수민족 가운데 라후족 등은 단군의 후손으로 고구려 유민들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나왔다. 이게 맞는다면 보이차는 우리가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거나 날씨 변화 등으로 잃어버렸던 우리의 소중한 전통 차 문화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사실 중국이 원산지면 어떻고 우리 선조의 것이 아니면 또 어떤가? 좋은 것은 같이 쓰고 김치처럼 누구나 먹어야 한다. 혐한정서가 있는 일본에서 여전히 김치는 ‘절인 반찬’ 1위라고 한다. 좋은 음식은 한 나라의 것이 아니다.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좋은 차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전 인류가 함께 나눠 마시는 것이다. 석유가 외국산이라고 해서 안 쓸 것인가?

보이차는 발효차다. 김치와 같이 우리 몸에 좋은 곰팡이와 균이 살아 있는 생명체 덩어리다. 수입해서 바로 마시는 차도 아니고 우리 땅에서 습기와 공기와 함께 숨 쉬며 안정을 취한다. 같은 보이차라도 중국에서 마시는 차 맛과 우리나라로 들여와 마시는 차 맛이 다르다. 글로벌시대에 윈난 지방 소수민족의 보이차를 단지 지금의 국경이나 영토에 집착해서 ‘중국차 made in China’나 ‘Chinese tea’라고 해서는 안 된다. 3000년 전 용산문화가 중국 한족의 문화가 아닌데도 이를 중국문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는 동북공정을 인정해주는 셈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영원히 만주를 내주고 간도를 넘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석유는 중동 등에서 생산되지만 정유 기술은 우리가 최고라고 한다. 석유를 정제한 것처럼 보이차를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안정시키고 ‘보다 더 보이차다운 맛’을 내게 한다면 그건 바로 우리의 것이 아닐까? ‘호중일월장’(壺中日月長)이라고 한다. 잎에서 나서 수확되는 시간보다 차호 속에서 보내는 세월이 훨씬 더 길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월진월향’(越陳越香),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는 뜻으로 모두 보이차에 해당한다. 입양해 와서 기른 양자는 내 아들이다. 이주배경을 가진 다문화 가족이 우리나라 사람인 것과 같다. 보이차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땅의 젓을 우리 인간에게 베풀면서 국경을 초월하며 시대와 교류하는 법까지도 몸소 가르쳐준다. 우리가 즐기는 김치처럼 보이차 그것 역시 우리가 되찾은 ‘오래된 미래’이다. 제공 뉴시스.

* 이 글은 미디어붓다(www.mediabuddha.net)에 연재 중인 ‘우리문화이야기 3’을 수정 보완했다.

** 이 글은 일방의 의견을 지면에 옮긴 글에 불과하며 다른 의견이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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