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朴·崔 공모 알고 대가 바랬다" 묵시적 인정..."포괄적 승계 등 현안에 직무·지원 대가 인정.."재단 지원은 무죄···"부정한 청탁, 명시적 없어"

(창업일보)이석형 기자 =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89억 뇌물유죄를 인정한 근거로 법원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등 포괄적 현안에 대한 직무 지원 대가를 바란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25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핵심 쟁점이 됐던 뇌물공여 혐의를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승마 지원 77억여원 중 72억9427만원과 영재센터 지원 16억2800만원 등 총 89억2227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즉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 승마를 지원하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후원을 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지원을 얻기 위한 부정한 청탁이 묵시적으로 있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삼성의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 등 총 89억2227만원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직무와 지원 사이에 대가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삼성의 지원이 이뤄진 것에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삼성이 포괄적 현안으로 승계작업을 추진했다며 이 부회장 등이 그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면서 그 대가로 승마지원 및 영재센터를 후원한 것으로 봤다. 단순뇌물죄로 기소된 승마 지원은 공무원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만이 인정되면 성립된다.

최씨와 오래된 친분을 맺어온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의 단독면담에서 승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지원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 등은 이 같은 지원 요구가 최씨와의 공모에 따른 정씨 개인의 지원 요구인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승마 지원이 미흡하다며 이 부회장을 질책했고 임원 교체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승마지원 후 감사를 전하는 등 일련의 행동에 비춰 최씨에게 승마 지원 상황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단순뇌물죄는 공무원이 공무원이 아닌 자와 뇌물수수를 공모해 뇌물을 받게 하는 경우, 이는 자신이 받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다. 또 이들이 공모해 공무원이 아닌 자가 뇌물을 받은 경우에 공무원에게 실제 뇌물이 주어지거나 경제적 관계에 있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 역시 2014년 12월 또는 2015년 1월에 박 전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사실상 정씨 개인에 대한 승마 지원 요구이며 배후에 최씨가 있었던 것을 알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5년 7월말 이후에는 정씨의 승마 지원이 실질적으로 최씨에 대한 지원이고 대통령에 대한 금품 공여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이들은 2015년 3월 내지 6월께 미필적으로나마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에 관해 인식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1차 단독면담 이후 승마 지원이 이뤄지는 동안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임원들에게 대통령 요구를 전달하고 포괄적 지시를 했고, 지원 경위를 보고 받고 확인하면서 관여한 점도 인정됐다.

또 거액의 용역대금과 마필을 최씨가 지배하는 코어스포츠에 보냈고, 은밀하게 이를 제공했다는 점이 유죄에 힘을 실었다. 삼성이 정씨가 탄 마필의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는 최씨 요구대로 말을 뇌물로 줬다고 인정했지만 차량의 소유권은 최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영재센터 지원 규모나 방식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특정됐고 사업의 타당성이나 공익성의 충분한 검토 없이 이 부회장 등 지시로 후원이 이뤄졌다는 점이 대가관계가 있다는 판단에 한몫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 등 삼성 측이 최씨의 공갈이나 강요에 의해 승마 지원 등을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제3자 뇌물 혐의가 적용돼 '부정한 청탁'이 관건이 됐던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은 전부 무죄로 판단됐다. 재단 지원은 특검이 기소한 뇌물공여 298억2535만원 중 220억2800만원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이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했다는 점을 알았다고 볼 수 없고, 전경련이 정해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동적으로 응했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 경제수석실 주도로 재단 설립 및 출연이 이뤄지면서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납부한다는 정도로 인식했으며, 대통령이 여러 대기업 총수에 출연을 요청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만을 위한 대가로 지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관련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묵시적·간접적 청탁을 했다고 인정되지 않은 것이 재단 뇌물공여의 무죄 판단에 핵심이 됐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등 구체적 현안을 부탁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단독 면담한 2015년 7월25일에는 이미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이뤄졌고, 대통령 말씀자료나 안종범 수첩만으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순환출자고리 해소 역시 삼성 측 임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청탁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대통령에게 전달돼 지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의 뇌물공여가 유죄가 되면서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한 80억9095만원도 유죄로 인정됐다. 선수단 차량 및 마필 수송차 구입 대금 명목, 말 살시도 매매대금 및 보험료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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