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베이비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해마다 태어나는 아기 수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올해는 특히 말띠 해라며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바람에 유아업계는 더더욱 울상을 짓고 있다. 이 때문에 매출 부진을 만회하려고 유아관련 업체들이 속속 값비싼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면서, 국내 베이비산업 구조가 고가(高價) 시장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아기가 점점 줄어요 =베이비산업의 ‘고객’인 유아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신생아수는 55만7000명. 지난 2000년의 ‘밀레니엄 베이비붐’을 제외하면, 70년대 이후로 출생아수는 계속 감소해왔다. 이는 분유·기저귀·유아복·유아용품 같은 전통적인 베이비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인점 이마트는 “올들어 10월 말까지 분유·이유식 판매량이 작년보다 10% 줄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올 3분기 매출은 작년동기에 비해 4.7%와 1.5%씩 늘었다. 하지만 ‘본업’인 분유나 우유 매출이 늘어난 게 아니라, 기능성 음료를 팔아 간신히 매출을 늘렸다. 이들은 “우유와 분유 매출은 작년보다 7~8%씩 감소세”라고 밝혔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유아복 매출도 2년새 18.6%(2000년 상반기 1934억원→2002년 상반기 1574억원)나 줄었다.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는 5개의 유아복 브랜드 중 2개 브랜드가 매출 부진으로 백화점 영업을 중단하고 매장을 철수했다.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도 1개 유아복 브랜드가 철수했다. 신세계 백화점부문의 유아복 담당바이어 이미은씨는 “2000년의 ‘밀레니엄 베이비붐’ 덕에 잠깐 반짝한 것 말고는, 유아복 매출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더 비싼 걸 팔겠다 =국내 유아산업은 생존의 돌파구를 ‘고급화 전략’에서 찾고 있다. 하나를 팔아도 더 비싼 걸 팔면 그만큼 매출 부진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가방은 지난 8월 말 ‘아가방 에뜨와’란 최고급 브랜드를 출시했다. 아기 코트 한 벌에 11만∼45만원. 기존 아가방 브랜드보다 15% 가량 비싸다. 프랑스의 크리스찬 디오르에서 유아복 디자인을 담당했던 패션디자이너 홍은주씨를 영입, 기획에서 디자인까지 브랜드 전반에 걸친 컨설팅을 맡겼다. 유아복에도 여성복의 ‘부티크’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EFE(옛 해피랜드)도 기존의 고가 브랜드보다 10~20% 더 비싼 ‘프리미에 쥬르’라는 새 브랜드를 올 가을에 내놓았다. 해피랜드의 지난해 매출(1373억원) 가운데 고가 라인이 매출의 25% 이상을 차지했다. 그 덕에 해피랜드는 출산율 감소에도 불구, 매출이 13%나 성장했다. 삼도물산도 유아복 ‘쇼콜라’에 이어 고급 브랜드를 내년 초 새로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아용품 업체들도 마찬가지. 보령메디앙스는 최근 은(銀) 젖병(260㎖에 1만4000원)을 내놓았다. 이는 일반 젖병(6000원대)보다 값이 2배가 넘는 제품이다. 유아용 스킨케어 제품도 부쩍 고급화하고 있다. 베이비로션은 200㎖에 7000원∼1만원짜리 제품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엔 기능성을 가미, 1만4000원∼3만원으로 가격대가 높아졌다. 분유업체들도 ‘프리미엄 분유’로 판매량 감소를 만회하려 하고 있다. 남양유업, 매일유업, 일동후디스는 기존 제품(1통에 1만3000~1만4000원)보다 35% 가량 비싼 1만8000∼1만9000원대의 프리미엄 분유를 최근 일제히 출시했다.

 

육아비 겁나요 =“하나밖에 없는 아기이니 남다르게 치장하고 특별하게 가르치자”는 일부 소비자들의 욕구와도 맞물리면서, ‘고가’(高價)의 프리미엄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또 전통적인 베이비산업은 위축되는 반면, 교육·완구·이벤트 같은 신종 베이비산업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최근 30대 초반의 한 맞벌이 부부는 서울 여의도의 이벤트홀을 빌려 아기 돌잔치를 했다. 아기 사진을 넣은 현수막을 내걸고 아빠는 턱시도를, 엄마와 아기는 드레스를 입었다. 이벤트회사에 진행을 맡기고, 80여명의 손님들에게 1인당 3만원짜리 식사를 대접하느라 이날 하루에 지출한 돈이 430만원. 아빠의 한 달 월급보다 더 많다. 유아교육도 베이비산업 중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다. 유아교육업체 한솔교육은 지난 93년만 해도 매출이 31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8년만에 매출이 94배나 증가, 지난 2001년에 2910억원을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는 아기 수는 1.30명(2001년). 선진국 일본(1.33명)이나 영국(1.64명), 미국(2.13명)보다도 더 낮다. 그러다보니 젊은 아빠 엄마들은 아기를 먹이고 입히는 기본 육아비용 외에, 아기를 더 예쁘게 치장시키고 특별하게 키우는 데 돈을 쏟고 있는 것이다. 국내 베이비산업의 프리미엄 시장이 커지자, 수입 브랜드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폴로 보이즈, 게스 키즈, 오일릴리 키즈, 아르마니 주니어, 디오르 베이비 같은 외국의 유명브랜드 유아복들이 속속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영국의 카시트 전문회사인 ‘브라이텍스’가 국내에 진출했고, 쌍둥이 유모차로 유명한 영국계 ‘맥클라렌’은 올 상반기에 300만원대 고급 유모차 15대를 국내에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이탈리아 브랜드 직수입 매장인 ‘세비 앤 트루디’에선 유아용 ‘딸랑이’ 하나를 30만원에 팔기도 했다. 버버리가 베이비 향수를, 오리진스와 아베다는 유아용 보디케어 상품을, 불가리는 비누·로션·크림 등 베이비 세트 판매도 시작했다.

 

하지만 이같은 베이비산업의 구조 변화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허리 휘도록 늘어나는 육아비 부담’으로 직결된다. 유아산업의 고급화 전략이 ‘마음 약한’ 부모들을 자극하면서 “나는 못해도 내 아이만은 …”하는 심정으로 출혈 소비를 자극하고 위화감을 부추기는 현실이다. 서울 강남에서 유아복가게를 운영하는 주부 김모씨는 “한 번에 아기 옷을 수십만원어치 구입하는 엄마들 중에는, 한도 초과한 카드를 5개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경쟁심리 때문에 또다시 아기 물건을 사는 엄마들도 있다”고 말했다. 자료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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