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10호 김남근 변호사. 1963년 서울 중구 신당동 출생(60세). 서울 한영고등학교 졸업(1982),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졸업(법학)(82학번), 고려대학교 법학박사(민법)(2013)

[공정언론 창업일보]더불어민주당 인재위원회(위원장 이재명 대표)는 24일 오전 국회 본청 당대표회의실에서 법무법인 위민 김남근 변호사(60세)를 더불어민주당 인재로 발표했다.

서울 중구(당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태어난 김남근 변호사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서도 학업에 열중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대통령선거 개헌 운동에 참여하다 남영동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인천지역에서 노동자의 권리신장을 위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보다 전문적으로 사회개혁 운동에 나서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김남근 변호사는 부유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변호사가 되고자 결심했던 이유를 가슴에 새기고 민생문제 개혁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왔다. 그가 변호사를 시작한 1999년은 IMF 경제위기로 인해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목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희망퇴직이 시행돼, 회사에서 나온 노동자들이 퇴직금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파산하는 사건도 허다하게 발생했다. 정부가 신용카드 소비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대규모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고리대금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던 이자제한법도 IMF의 요구로 폐지되며 중산층은 붕괴되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됐다. 김남근 변호사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등 시민운동 조직을 꾸려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고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의 불안전한 삶을 개혁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김남근 변호사는 공익소송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2009년 이전까지는 저녁 늦게 집회나 시위를 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었다. 직장인이나 대학생 등은 일과를 마쳐야 집회에 참여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지만 군사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진 야간집회 금지조항 때문에 대량의 전과자가 양상되는 형국이었다. 김남근 변호사를 필두로 구성된 야간집회 위헌소송 변호인단은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군사정권의 유산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결과, 야간집회 헌법불합치, 일부위헌 결정을 받아내며 우리나라는 비로소 합법적인 야간집회·시위가 가능하게 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공익소송으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는 소송 뿐만 아니라 입법을 통한 사회개혁 활동에도 애써왔다. 경제개혁을 위해서는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시민사회와 긴밀히 소통하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분양가상한제, 주택임대차 갱신제도 등 경제민주화 실현과 경제적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민생개혁 입법운동을 추진해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공동의장을 역임하며 민주당과 지혜를 모아 소상공인·중소기업·노동 분야의 민생과제를 발굴하고 지원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역량을 발휘해왔다.

김남근 변호사가 전문성 뿐만 아니라 정책능력까지 겸비한 인물로서 그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개혁을 위한 활동을 주도하고 실력을 입증해왔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위기에 처한 민생현장을 보듬고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는 정치를 결심한 이유로 “경기침체 장기화로 민생현장의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초부자 감세 등 특권층에 편항된 정책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불공정한 경제구조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현 정부 정책을 바로 잡고, 국민의 삶에 밀접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시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민생개혁 연합정치를 펼처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남근 변호사 주요 학력 및 경력 사항 

▷1963년 서울 중구 신당동 출생(60세) ▷서울 한영고등학교 졸업(1982)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졸업(법학)(82학번) ▷고려대학교 법학박사(민법)(2013)

[주요 경력]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 (’99~’24)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13~’24 ▷대한변협 공로상 (2005) ▷건설교통부 주택공급제도 검토위원회 위원 (2004)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2007 - 2008) ▷민변 민생경제위원장(2007-2009), 부회장(2016. 5. - 2020. 5.) ▷공정거래위원회 “법 집행 체계 개선 TF“ 위원(2017. 8. - 2018. 2.)”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 위원장(2017. 12. - 2018. 3.) ▷법무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2017. 10. - 2019. 10.) ▷서울특별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2016. 9. - 2020)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TF” 위원(2023 .6.) ▷중소기업중앙회 공정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2019 - 2022)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심의위원회 위원 (2019. 4. - 2022) ▷중소기업중앙회 납품대금제값받기 위원회 공동위원장(2022 - 2024) ▷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2020 -2024)

평범하고 내성적이었던 모범생 김남근

김남근은 서울 중구(당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두 분 다 6.25전쟁 전까지 개성 출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결혼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향에 돌아가길 염원했던 실향민들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인 2008년 휠체어에 모시고 개성관광을 다녀온 것이 어머니에 대한 가장 큰 효도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학교 때까지 셋방살이를 하던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이었지만 학교에서 줄곧 전교 1등을 하고 반장을 하던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시청에서 운전기사를 하던 말단 공무원이었기에 자식은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고, 소년 김남근 또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정고시에 도전할 것을 목표로 1982년 서울법대 공법학과에 입학한다.

학생·노동 운동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 초반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철권통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로, 모범생이었던 김남근 또한 대학 1학년 때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항의하는 교내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징계를 당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1985년에는 대통령선거 개헌을 요구하는 서울대 시국강연 등 개헌운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죄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고 김근태 전 의장(당시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의장)이 주창한 민족민주혁명 이론에 따라 개헌 투쟁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김근태 의장은 민주화 이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석방 뒤엔 인천지역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20대를 보냈고, 30대에 접어들며 보다 전문적인 사회개혁운동을 펼치고자 사법고시에 응시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불안한 민생문제 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민생개혁 운동 참여

김남근 변호사가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던 1999년은 IMF 경제위기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의 충격을 겪던 시기였다.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희망퇴직으로 회사에서 쫓겨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퇴직금도 건지지 못하고 상가에서 쫓겨나며 파산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신용카드 소비를 장려하면서 카드빚 등으로 인해 400만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고리사채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던 이자제한법은 IMF의 요구로 폐지된 상태였다. 신빈곤층으로 몰락하는 현실에 좌절하여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중산층 가장 소식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던 때였다.

김남근 변호사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동료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 시민운동 조직을 결성했다. 고리사채 피해 채무자, 쫒겨나는 상가임차인, 갑질 피해 가맹ㆍ대리 점주, 납품거래 피해 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고 중산층의 불안정한 삶을 개혁하는 활동을 벌여 왔다.

소송과 입법을 통한 사회 개혁운동 전개 

김남근 변호사가 추진하여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공익소송 중에는 야간집회ㆍ시위에 관한 위헌소송이 있다(헌재 2009. 9. 24. 2008헌가25, 헌재 2014. 3. 27. 2010헌가2). 2009년 이전만 하더라도 저녁시간에 집회나 시위를 하면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직장이나 대학생 등은 직장이나 학교의 일과가 끝나야 비로소 집회ㆍ시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바꾼 민주화 운동들은 대개 야간집회였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군사독재정권의 유산으로 집시법은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있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고 대량의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김남근 변호사를 대표로 하는 야간집회 위헌소송 변호인단이 야간집회 헌법불합치, 일부위헌 결정을 받은 후에 비로소 합법적인 야간집회ㆍ시위가 가능하게 되었다. 

김남근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에만 기대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불평등, 불공정한 경제관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입법기관을 통한 관련 법률의 제·개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김남근 변호사의 활동은 입법 운동까지 확장되어 왔다. 시민단체에서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가맹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무주택자, 세입자 보호를 위한 분양가상한제, 주택임대차 갱신제도 등 다수의 경제민주화·민생개혁 입법운동을 추진해 왔다. 

대한민국 민생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민생개혁’ 포부

김남근 변호사는 지금까지 시민사회 영역에서 펼쳐 오던 민생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이제 국회라는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근본적 민생개혁을 이끄는 정치활동으로 이어가기로 결단을 내렸다. 특히 민주당과 민생·시민단체간의 가교 역할을 통해 ‘민생개혁 연합정치’를 실현함으로써,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와 민생경제살리기 정책의 거대한 흐름을 이끌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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