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언론 창업일보]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선거제도 개편과 정치통합의 길'이라는 제하의 기자회견을 갖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비례대표 선거방식을 병립형으로 회귀하겠다"는 의중을 밝힌 것과 관련해 "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고문은 또한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정치적 큰 후퇴"라고 밝혔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선거제도 개편과 정치통합의 길  <전문>

저는 오늘 선거제도 개편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 저의 소견을 밝히러 이 자리에 섰다. 

얼마 전부터 거대 양당 사이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회귀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11월 30일에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선거와 당대표 선거 공약인 위성정당방지법의 당론 채택이 무산되었다. 이재명 대표는 며칠 전 선거와 관련해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발언하면서 연동형비례대표 유지 등 정치개혁 약속의 파기를 시사했다.  

여야가 합의하여 연동형을 병립형으로 회귀시키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이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대결구조를 심화시키는 커다란 후퇴다. 

우리나라 정치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 이후로 갈등과 대립의 정치, 싸움의 정치로 점철되고 있다. 거대 야당은 압도적 다수의석을 무기로 탄핵을 마구 자행하며,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할 것이 명백한 법안을 의도적으로 통과시켜 국정을 혼란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이념 논쟁을 앞세워 보수 세력 결집에 급급해 있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진영정치와 패권정치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엄혹한 국제적 대결 구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세계의 진영 대결이 가속화되고, 반도체 등 신기술 산업에 대한 공급망 재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전쟁의 확산, 기후변화, 그리고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에서 일어나 확산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등, 세계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을 “지옥의 해”라고 암울하게 전망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어두운 환경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국력을 모아야 할 이때, 우리나라는 정치적 극한대립으로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다당제를 통한 연합정치 속에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 최선의 과제다. 내가 2018년 12월에 열흘간 단식을 한 것은 바로 다당제 정치개혁의 기초를 깔기 위한 것이었고,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이를 위해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다.  

다행히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이 연동형비례대표제 유지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위성정당방지법을 발의했다. 다행스럽고, 지금과 같은 당의 분위기에서 용기있는 행동이다. 다만 제출된 법안의 내용을 보면 이 정도로는 연동형을 빠져나갈 구멍이 크게 뚤려 있어서 걱정스럽다. 

우선 이탄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치자금법 일부 개정안에서 제시하는 정당보조금에 대한 일부 페널티는 연동형비례대표제 유지에 아무런 효력이 없어 보인다.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놓고 합당을 안 하면 그만이다. 지금도 제명당한 의원들이 당 밖에 있어도 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합당은 대결정치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김상희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75명 의원 명의로 제출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 또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비율이 지역구 후보자 추천 비율의 100분의 2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거대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해야 하기 때문에 비례정당을 만들 수 없게 한다는 취지에는 적합하나 부실 비례정당을 양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하나도 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을 당선시켜서 국회에 진입하고 나중에 거대 정당에 합당한 사실상의 위성정당이 많은데 이러한 폐해를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정당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구 후보를 내야 하는 방식의 보완이 요구된다. 

지금 진행되는 정치상황으로 볼 때 이번 총선에는 어차피 많은 군소정당이 출현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을 억지로 거대 양당에 가두어 넣고 극한대립의 소도구로 쓸 생각보다는, 이들을 독립시키고 우군으로 만들어 연합정치의 기초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여당도 과반의석의 꿈보다는 국회 내 연립정권으로 정치적 안정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야당 모두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입법에 힘을 모으기 바란다.  

이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을 벗어나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 집권이 정치의 목표라고 해서 선당후사가 최고의 덕목으로 칭송되지만, 나라가 어려운 이때 우리는 선국후당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법리스크에 웅크러진 당을 살리느라 정부와 대통령에게 탄핵이다, 특검이다 해서 공격을 퍼붓지만, 민주당은 민주당의 자존심과 긍지, 지도자의 체면을 생각해야 한다. 경기도지사와 성남 시장을 지낸 사람을 분당을 제쳐놓고 인천에 공천하고, 그로 인해 당 전체가 사법리스크의 올가미에 엮여 있는데 대해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라고 잘한 것은 없다. 당을 위해서 내 양심을 판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내 개인의 명예와 욕심을 앞세워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고 자부해 왔고, 민주화의 성전인 민주당을 위해 나를 바친 일도 많았다.  

민주당의 역사는 위대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이제는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세울 때다.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진정한 민주당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민주당을 똑바로 세워달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나라를 위한 결단에 나서시라. 

대통령과 여당에 한 말씀 드리겠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께서 나라를 잘 다스려주기를 바랐고 그렇게 기대했다. 정치 경험이 없다고 희롱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희망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대통령은 온 국민을 끌어안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검찰 출신으로 범법자를 상대하기가 심정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의 대표를 상대하고 소통하는 것은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의무다. 국정 운영의 실무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사적인 인연을 떠나 전문성과 능력을 중심으로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은 국정 최고 운영자의 중요한 책임이다. 나의 반대자는 물론이요 잘못을 범한 일이 있더라도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 품어안고 배려함은 국가 지도자의 핵심적 함량이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패배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그리고 지금 진행 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난맥상을 거울삼아 국정운영에 진정한 반성과 획기적인 전환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들과 산에나 다니고 막걸리나 마시고, 그동안 소홀히 했던 집안 일이나 돕고 책이나 읽으면서 한가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일생을 부대끼며 살아온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그리고 국가의 번영 문제 때문인지 요즘 걱정은 날로 더 심해진다. 나라 걱정 없이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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