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무가 남긴 것은 손톱만한 크기의 USB였다.
김전무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손톱만한 크기의 USB였다.

김전무가 내게 남긴 것은 손톱만한 USB였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파일에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대부분은 김전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기형태로 쓴 내용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 둔 후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치고 6개월을 쉰 후에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파산할 경우 그의 손실이 제일 컸다. 주주들이 그를 불러들였다. 그들의 희망은 회사를 빨리 정리해서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 책임을 대주주인 그에게 맡겼다.

그가 대표로 회사에 복귀했을 때 통신사업부 직원들은 대부분 퇴사를 한 상태여서 두 개의 사업부 중에 하나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건축설계S/W사업부의 고객유지 보수팀은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프로그램은 미국 시카고의 설계회사에서 개발하여 공급했다.

마이컴은 미국 본사의 프로그램을 한국의 설계회사들에 독점 공급하고 단순한 유지보수업무를 통하여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300여명의 직원들은 40여명정도만 남았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대다수가 이직할 곳이 없는 직원들이었다. 

떠날 직원들은 모두 떠났다. 

김전무는 복귀하자마자 직원들의 강점과 성격유형, 버킷리스트 등을 분석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했을 때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그의 성격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팀원들과 면담도 했다. 그는 팀회의에 참석하여 조용히 듣고 앉아있기만 했다.

눈치 빠른 관리자들은 그가 절망했다고 느꼈다.

김전무는 직원들에 대해 몇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팀별 문제점 해결에 대한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회의시간은 길었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업무 실책에 대해서 개선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으로 여겼고 회의가 끝나면 감정의 앙금이 남아 적이 되었다.

회의는 근본적인 원인파악이나 문제제기 보다는 자기방어에 급급한 감정의 싸움이나 논쟁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것을 커다란 두려움으로 느꼈다. 충돌을 피하려는 두려움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했다. 변명 만들기에 급급했고 문제의 핵심은 회의를 할수록 양파껍질 속처럼 더 깊숙이 파묻혔다.

회의 결과에 협조하겠다는 동의와 사인을 했지만 회의를 성과있게 마무리했다는 수단이었다. 회의는 회의로 끝이었고 개선된 결과는 없었다.

열정과 노력으로 열심히 하면 바보 취급을 당했고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회사의 실적하락을 당연하게 여겼고 무관심했으며 반면 개인의 경력이나 비난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 특징들은 망하는 기업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김전무는 고민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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