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보】이태식 기자 = 2014년 조선 빅3의 영업적자는 2조6266억원, 2015년에는 7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2년간 10조원의 적자를 봤다. 국내 조선업계의 현주소다.
 
불과 10년전만해도 가장 잘 나가던 업종 조선. 울산과 거제를 잇는 동남 경제벨트의 핵심 구동역할을 하던 국내 조선사업이 침몰위기에 몰렸다. 오늘은 우리나라 조선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짚어 보았다. 편집자 주. ⓒ창업일보.
 

↑ 대우조선해양, 세계 최초 쇄빙 LNG운반선‘건조 사진 기사 뉴시스. ⓒ창업일보.
 
대한민국 산업 ·기업 구조조정의 중심에 있는 조선업계는 불과 10년만 해도 '가장 잘 나가는' 업종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초중반 중국 특수에 힘입은 세계 조선업계의 유례 없는 호황 속에서 글로벌 수주물량 톱 1~6위 기업 자리를 휩쓸면서 가장 많은 수주를 따내 세계 최강 조선국으로 호령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온 세계 조선 및 해운업의 침체로 한 차례 기가 꺾인데 이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 설계 및 시공에 무리하게 뛰어들고, 제살깎기식 저가수주를 거듭한 결과 막대한 손실을 떠앉게 됐다. 그 결과 과잉 설비 및 인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겪어 보지 못한 대수술을 앞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독창적 전함 중의 하나로 꼽히는 거북선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DNA를 물려받은 후예들,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앞세워 해외에서 선박건조자금을 발리고 배를 수주,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유를 창조해 냈던 기업가의 창업 정신과 배포를 생생히 기억하는 우리 세대가 과연 조선업의 지난 영광을 되살릴 길은 없는 것일까.
 
1일 금융권과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의 사상 최대 호황은 2001년 11월 중국이 세계역기구(WTO) 가입 승인 이후 2002년 정식회원국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중국은 WTO가입과 동시에 90년대 초반 90%에 달하던 관세율을 2005년까지 10%대로 낮줬다. 무역량은 이에 맞춰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유가도 함께 상승하며 선박수주에 불을 지폈다.
 
클락슨이 조사한 전세계 신조선 수주량에 따르면 2001년 1880만 CGT에서 2007년 9430만 CGT로 7년 새 5배 넘게 폭증했다. 한국은 일본에 가린 세계 2위의 신조선 수주국가였지만 2003년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서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대 수주국가로 올라섰다.
 
한국이 2001년과 2002년 각각 550만 CGT, 670만 CGT를 수주했을 당시 일본은 640 CGT, 790만 CGT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선박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2003년 1590만CGT까지 수주량을 끌어 올렸고 1330만 CGT를 확보한 일본을 제치며 세계 최고수주량을 가진 나라가 됐다.
 
한국의 강세는 2006년까지 3년간 이어졌다. 이후 저가선박을 앞세운 중국이 2007년 한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2007년은 신건조수주량이 가장 많았던 전세계 조선의 호황기의 정점을 찍은해다. 당시 신조선 선박수주는 ▲한국 3270만 CGT ▲중국 3350만 CGT ▲일본 1400만 CGT 등을 기록했다.
 
한국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을 주도했다.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한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벌크선 등 저사양 선종 수주를 통한 외형 성장에 치중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틈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한국은 주력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중국의 저가수주에 맞서는 전략을 세웠다.
 
국책은행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수주를 이끌기 위해 저가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시기"라며 "세계 선박 수주량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제살깎기 경쟁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수주량은 2007년 정점을 찍은 이후 떨어지기 시작했다.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 5140만 CGT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45.6% 급감했고 2009년에는 1150만 CGT로 77.6% 폭락했다. 또 유가도 낮게 움직이면서 수주는 서서히 줄어갔다. 희망은 남아 있었다. 세계에서 수주 잔량이 가장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이 수주잔량부문에서 전세계 1위부터 6위까지를 차지하면서 희망을 불태웠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수주잔고에 대한 선사와 계약취소는 물론 인도연기 등의 이슈도 함께 발생했다.
 
노르웨이 리스크 관리서비스 및 컨설팅 기관인 DNV의 자료를 보면 2009년 전세계에서 599척의 선박건조 계약취소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한국의 취소건수가 226건에 달했다. 특히 국내 중소형 조선사들은 해운업의 불황과 함께 벌크선과 탱커선에서 중국에 밀리면서 자금난이 심화됐다.
 
YS중공업과 C&중공업이 퇴출됐으며, 진세조선과 녹봉조선, 대한조선, TKS조선, 세코중공업, 광성조선, SLS조선, 21세기조선 등도 워크아웃 등의 절차를 밟았다. 성동조선의 채권단 관리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린 2008년 8월부터 전 선종에 걸쳐 선가(船價)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여기에 저가수주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사의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년대 초중반 시장의 급성장으로 조선사들이 선박 건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외형적인 확장을 시도했다"며 "이후 수주량은 급감했지만 건조능력이 늘어 수주잔량은 감소했다"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한국 조선업의 침몰위기가 수주물량 급감이나 저가수주에서만 온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선박수주량은 급감했지만 하락하던 유가가 다시 뛰면서 해양플랜트로 불리는 새로운 발주가 폭주, 돌파구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금융위기 이후 2010년에 배럴당 연평균 78달러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2011년 독재 정치에 항거하는 중동 '아랍의 봄' 사태를 전후로 배럴당 110달러에 육박했다. 2012년 109달러, 2013년 105달러를 유지했다. 지난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였다.
 
이 덕분에 해상에서 원유를 캐 올리는 해상플랜트 발주가 급격히 늘었다. 2009년 이후 상선 발주 가뭄기에 무리하게 집중 수주한 '해양 플랜트의 저주'가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시설 및 엔지니어 인력을 감안한 적정 생산 능력보다 150% 정도 더 많이 수주했고, 3사 모두 과잉 수주를 하다 보니 인력 수급도 안 되고 인건비도 크게 올라 대규모 부실로 이어졌다. 능력도 안되면서 시공은 물론 설계까지 맡아보니 공기 지연으로 이어졌고, 이는 추가 비용 상승을 불렀다.
 
발주처인 오일 메이저들은 당시 해양플랜트 건조가 한국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라 해양플랜트 수주가를 더 받을 수 있었지만, 빅 3사는 지나친 경쟁으로 제살을 깎아먹으며 저가 수주를 거듭했다.
 
납기 지연, 저가 수주로 비용은 쌓여만 갔고, 엎친데 덥친 격으로 미국의 세일가스 개발 등으로 마냥 고공행진을 할 것 같았던 국제유가는 2014년 들어 배럴당 100달러가 무너졌다(연평균 97달러). 작년에는 배럴당 연평균 51달러로 떨어졌다. 불과 2년 사이에 국제유가가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국제유가는 올들어서도 하락세를 지속 중이다. 최근에도 해양플랜트개발의 손익분기점으로 일컬어지는 50달러 대 아래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유가가 낮으니 추가 수주는 고사하고 이미 맺은 계약조차 파기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2014년 조선 빅3의 영업적자는 2조6266억원에 달했다. 2015년에는 7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2년간 10조원 안팎 손실로 침몰 위기에 내몰린 빅 3의 히스토리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조선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양 플랜트 분야, 아니 조선업에서 완전히 손을 털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아직도 현대중공업 등 빅3는 LNG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기술력만큼은 세계 1위다.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고는 하지만 한 10년 동안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낙관적 평가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당장 구조조정에 전력 투구, 부실을 털어내고 견실한 흑자구조로 전환하는 환골탈퇴를 하는 게 급선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 조직을 슬림화해 설비과잉을 줄이고, 시공 뿐 아니라 설계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수주, 매출 등 외형 성장에만 목매달 게 아니라, 기존에 설치된 해양 플랜드의 유지 보수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익을 올리면서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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