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보】경돈일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오는 8일, 시행 100일을 맞는다. ‘단지 통신사만을 위한 법’이란 조롱을 받으며 폐지 논란까지 불거졌던 단통법이 이제는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법 시행 초기 얼어붙었던 통신시장은 단통법 이전 수준으로 거래량을 상당 부분 회복했으며, 불법 보조금은 단말기 유통시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아이폰6 대란’이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단통법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혼란은 예상보다 빨리 진압됐다. 이같은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 단통법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휴대폰 유통구조가 단통법 이전보다 투명해졌지만,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통신비 인하 효과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단통법 시행으로 인한 이동통신사들의 이익 개선 효과가 높아질 것이란 증권가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 단통법이 시행된지 100일이 지났다. 범시행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진은 전국 휴대전화 대리점·판매점 모임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중단을 촉구 집회에서 화형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고객 지원금 상한 요금을 실사용 금액에 맞출 것과 고객 위약금 철폐, 공시 지원금 상향, 공시 상한 기준 확대와 더불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장의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2014.10.30.

 

 

◇단통법, 대체 왜 만들었을까

 

규제 완화를 기기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이동통신시장 규제를 한층 강화한 단통법을 제정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동안 불법 보조금으로 혼탁해진 통신시장을 투명하게 정화하는 한편, 이통사들이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소비자를 위한 요금 및 서비스 경쟁을 하게끔 하려는 의도에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는 지난 2013년 초 최대 100만원이 넘는 보조금을 투입해 ‘123대란’ ‘211대란’ 등 숱한 대란을 촉발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감시를 피해 늦은 밤이나 새벽 보조금이 집중 투입되면서 최신 스마트폰 가격이 폭락했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구매자들이 스마트폰을 싸게 사기 위해 새벽부터 휴대폰 판매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방통위가 전년도인 2012년 12월 말 역대 최대 과징금 1064억원을 부과했음에도 이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제를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 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는 ‘보조금 투명화법’이라고도 불리는 단통법을 마련, 지난해 10월1일부터 시행했다. 이 법은 단말기 유통과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일부에게만 과다 지급하던 보조금을 모두가 부당한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도입 가능성이 높았던 분리공시(이통사가 판매점에 지급하는 지원금과 제조사의 장려금을 분리 공시하는 것)는 단통법에서 제외돼 이 법이 본래 의도했던 ‘통신비 인하’ 효과는 크지 않으리라고 예측됐다. 당초 정부는 휴대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규모를 공개해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려고 했으나 최종 입장을 바꾸면서 ‘반쪽짜리’ 단통법으로 전락했다.

 

◇이통시장 유통구조 개선 조짐 나타나

 

단통법 시행 후 소비자들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휴대폰을 살 수 있게 됐다. 대리점이나 판매점 직원들이 제시하는 가격 정보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 단말기 가격과 지원금 등의 정보가 이통 3사 홈페이지 및 전국 영업점에 공시되는 등 보조금 지급 구조는 예전보다 투명해졌다. 고가요금제나 부가서비스에 가입하는 비율도 줄었다. 반면 중·저가 요금제 가입 비중은 늘었다. 2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 6만원대 이상 고가요금제 가입자 평균 비율은 15.7%로, 7~9월 평균 33.9%의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부가서비스 가입 건수는 지난해 1~9월 하루 평균 2만1972건(37.6%)이었으나, 10월과 11월 각각 4904건(13.3%), 5000건(9.1%)으로 크게 줄었다. 보조금을 미끼로 불필요한 고가요금제나 부가서비스 가입을 강제하던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단통법 전에는 보조금을 받는 대신 고가요금제를 쓰게 했는데, 이제는 그런 현상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실제 쓰는 통화량이나 트래픽을 분석해보면 고가요금제 할당량을 충분히 쓰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인의 이용 패턴에 맞는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통법 시행 초기 얼어붙었던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이통사들이 주요 스마트폰에 대한 지원금을 10만원 안팎으로 정하는 등 소비자들의 예상보다 현저히 낮은 지원금으로 인해 법 시행 첫 달 이통시장은 급격히 냉각됐다. 이후 현재 이통시장(2014년 12월말 기준)은 단통법 이전과 같지는 않지만, 전체 거래량에서는 90% 이상 회복 중이다.

이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와 미래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일평균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5만7464명으로, 1~9월 일평균의 98.5% 수준을 회복했다. 다만 번호이동 시장은 단통법 시행 전 수준을 되찾지 못했다. 지난해 1~9월 하루 평균 가입자 수는 2만2729명(38.9%)이었으나 10월 9350명(25.3%), 11월 1만5184명(27.6%), 12월(28일까지) 1만6700여명(29%)에 머물렀다. 대신 기기변경 시장은 커졌다. 같은 해 10월 1만3959명(37.8%), 11월 2만3234명(42.3%), 12월(28일까지) 2만3400여명(40.8%)을 기록, 신규나 번호이동 시장보다 규모가 더 확대됐다.

 


*이동통신 시장의 불법 보조금 차단과 소비자 이익 증대를 위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지난 10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휴대폰 판매 대리점 밀집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신비 인하 효과는 ‘글쎄’…단통법 최대 수혜자는 SKT?

 

이에 따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이 신규가입자 유치에 드는 마케팅 비용(보조금 등)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증권가는 이통3사의 2015년도 마케팅 비용이 전년보다 수조원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만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대 수혜 통신기업은 기존 가입자가 가장 많은 SK텔레콤이 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전체 이통 가입자(2014년 11월 현재 5703만여명)의 50%(2852여명)를 갖고 있다.

박희정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사무총장은 “올해 이통사 마케팅 비용이 1조가량 줄었다. 내년엔 2조가 줄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용구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지금까지 최대 수혜자는 통신사다. SK텔레콤이 이통사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이라며 “단통법이 시장에 안착하고 있지만, 단말기 유통권을 통신사가 가진 상황에서는 통신비가 내려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단통법 이후 통신사에게 유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됐음에도 불구, 이통사들은 최신 단말기에는 지원금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지원금을 50만원 이상 싣는 단말기 대다수가 15개월 이상 된 스마트폰(지난해 12월 기준)인데, 이마저도 대부분 8만원대 이상 고가요금제와 연계해 사용해야 받을 수 있다. 출시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는 단통법상 보조금 상한제 규정(현재 30만원)을 적용받지 않아 소비자들은 높은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가대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최근 이통3사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와 LG전자의 뷰3 등에 최대 80만원이 넘는 지원금을 준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3만~4만원대 중저가요금제와 연계해 쓸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20만~3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알고 보니 고가요금제 사용자만 우대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 이용자 A씨는 “갤럭시노트3의 보조금이 크게 늘었다기에 알아봤더니 80요금제(8만원대 요금제) 이상은 써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더라”면서 “고가요금제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용자들에게나 유용하지 고령의 사용자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요금제다. 현행 방법이 세대 간 차별을 낳는 결과를 만든 셈”이라 꼬집었다.

단통법 넉 달째에 접어든 지금, 소비자들이 누구나 똑같이 보조금을 받지만 다 같이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통사 한 가입자는 “지금은 ‘누구나 비싸게’지, ‘누구나 싸게’는 아니다. 싸게 팔려면 보조금 ‘하한’을 정해야지 ‘상한’을 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며 단통법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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