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 한국경쟁 9편 선정 "극영화 8편 , 다큐멘터리 1편"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한국경쟁 선정작 9편을 29일 발표했다.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

[창업일보 = 이이영 기자]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한국경쟁 선정작 9편을 29일 발표했다.

한국경쟁 부문은 연출자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섹션으로, 공모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월 3일까지 진행했다.

올해 출품작 수는 124편이며 108편 접수된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했다. 심사를 담당한 문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가족’이었다. 팬데믹 장기화로 한동안 바깥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시선들이 가족이나 사랑 같은 내적인 세계로 향한 듯 보인다”라며 출품작들의 경향을 소개했다.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글을 쓰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젓갈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워 부모에 관한 거짓말을 글로 풀어내면서 글짓기에 수반되어야 하는 진실성에 관해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다.

김진화 감독 '윤시내가 사라졌다'
김진화 감독 '윤시내가 사라졌다'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윤시내 모창을 업으로 한 가수 엄마와 몰카 촬영이더라도 높은 조회수만을 생각하는 ‘관종’ 딸이 사라진 스타, 윤시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 작품이다.

가족 이야기에 이어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도 다수 선정됐다.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은 ‘N번방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동영상 유출로 고통받는 딸과 그 딸을 바라보는 엄마, 그중에서도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풀어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영상 유출로 고통 받는 딸과 그 딸을 바라보는 엄마이다. 제목이 함의하듯 이야기의 중심은 엄마 쪽에 조금 더 쏠려 있다. 딸이 겪은 사건을 파악하고 딸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엄마는 서서히 진정한 ‘엄마의 자리’를 깨닫게 되고, 결국 가족은 새롭게 정립된다.

정지혜 감독 '정순'
정지혜 감독 '정순'

정지혜 감독의 <정순>은 엄마이자 중년 여성 공장 노동자인 ‘정순’이 동영상 유출로 받는 인간적 수모와 모멸을 홀로 감당하며 결단까지 내리는 이야기의 흐름을 힘있게 묘사하는 데서 주목할 만하다.  <정순>은 동영상 유출 사건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경아의 딸>과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의 구도와 주인공의 상황은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 정순은 엄마이자 중년 여성 공장 노동자다. <정순>은 가족에 대한 담론 보다는 사건의 당사자인 정순의 표정과 몸짓에 포커스를 맞춰 인간적 수모와 모멸을 홀로 감당하던 한 여성의 결단을 힘 있게 묘사하고 있다.

최정문 감독. '내가 누웠을때'
최정문 감독. '내가 누웠을때'

최정문 감독의 <내가 누워있을 때>는 우연히 길에서 조난된 세 여성의 이야기로,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내가 누워있을 때>는 우연하게 길에서 ‘조난’된 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면서 한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 그리고 친구로 맺어진 이 세 여성의 관계는 길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알량한 실체를 드러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진정한 연대의 시작이 된다.

한편 장르적인 시도가 눈에 띄는 이야기도 다수 선정됐다. 이완민 감독의 <사랑의 고고학>은 고고학자인 여성이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특이한 로맨스를 다루는 특이한 사랑 이야기이다. 고고학자인 여성이 8년 전 한 남자와 나눴던 사랑 이야기와 여전히 이 남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여성이 새로운 사랑을 꾸려가려는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유물을 보고서야 본질을 파악하는 고고학도답게 여성은 현재형의 사랑과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홍용호 감독 '폭로'
홍용호 감독 '폭로'

 

홍용호 감독의 <폭로>는 겉으로는 법정 스릴러 장르의 모양새를 드러내지만, 그 배면에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깔려있다. <폭로>는 겉으로는 법정 스릴러 장르의 모양새를 드러내지만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는 속내를 가진 영화다.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여성과 그의 무죄를 밝히려는 변호사, 유산을 노리는 남편의 가족이 뒤얽히는 차가운 법정 드라마가 한 축이라면 숨은 채 여성을 돕는 어떤 존재를 중심으로 한 뜨거운 멜로드라마가 다른 축을 이룬다.

임상수 감독 '파로호'
임상수 감독 '파로호'

 

임상수 감독의 <파로호>는 치매에 걸린 노모와 외부 상황으로 심적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이 주인공으로, 환영과 실제의 구분을 흐리는 가운데 관객을 ‘파로호’라는 거대한 알레고리 속으로 끌어당긴다. <파로호>는 한 남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심리 스릴러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수발하면서 모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남성은 걸핏하면 초인종을 눌러 자신을 호출하는 어머니와 그를 깔보는 모텔 바깥 사람들 때문에 커다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영화는 남성의 환영인지, 실제 사건인지 구분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섬뜩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파로호’라는 거대한 알레고리 안으로 보는 이를 이끌어 간다.

홍다예 감독 '잠자리 구하기'
홍다예 감독 '잠자리 구하기'

다큐멘터리 선정작인 홍다예 감독의 <잠자리 구하기>는 물에 빠져 허덕이는 잠자리 같은 자신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이 담긴 작품으로, 입시생 때부터 고뇌하던 대학의 의미를 간절하게 묻는다. 이 영화에서 홍 감독은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의 의미를 간절하게 묻고 또 묻는다. 입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지워가는 게 싫어 고등학생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었던 감독의 고민은 재수를 거쳐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지속됩니다. 물에 빠져 허덕이는 잠자리 같은 자신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이 영화 안에 가득하다. 경쟁심사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은 "예년과 달리 다큐멘터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부족했던 올해, 홍다예 감독의 <잠자리 구하기>는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경쟁심사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은 '심사의 변'을 통해 "올해는 소재라는 측면에서 보다 다양해졌고 장르적인 시도 또한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전반적인 질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고민의 깊이가 다소 얕아진 듯하고, 좋은 주제를 가지고도 핵심을 비켜가는 듯한 작품이 많았다. OTT나 웹드라마 같은 다양한 플랫폼의 확대도 관련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창작을 위한 여건도 나빠졌고 창작자가 어딘가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상황이 자연스레 결과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내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보다 많은 문제작과 만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선정작과 관련해 문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출품작들은 전체적으로 소재가 다양했고, 장르적인 시도가 많았다”라고 전반적인 심사평을 전했다. 이어 “선정작 9편 중 7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여성 감독의 강세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져 상업영화계에서도 여성 감독의 약진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경쟁 선정작(9편, 작품명(국문) 작품명(영문) 감독. 가나다 순)


▷경아의 딸 Mother and daughter 김정은 ▷내가 누워있을 때 When I Sleep 최정문 ▷비밀의 언덕 The Hill of Secrets 이지은 ▷사랑의 고고학 Archaeology of love 이완민 ▷윤시내가 사라졌다 Missing Yoon 김진화 ▷잠자리 구하기 Saving a Dragonfly 홍다예 ▷정순 Jeong-sun 정지혜 ▷파로호 Drown 임상수 ▷폭로 Havana 홍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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