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1인 지식창업이 아닌 팀(Team) 단위의 지식창업이었다"  글 권영석.  한성대 융복합 교양학부 교수. 한국지식창업연구소장, 성북구 시니어기술창업 센터장, 시니어창업교육총괄책임자 등을 역임했으며 벤처경영학 박사이다. [편집자 주]

 

<이전 호에서 계속>

김전무는 그들의 열정과 강점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S/W기술의 흐름을 알고있는 직원을 채용했다. 직원을 퇴사시켜도 모자랄 판에 그는 프로젝트성 계약직으로 두명이나 뽑았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고용도 끝나는 계약이었다. 특히 한명은 밥도 같이 먹고 술도 사주며 간신히 끌어 들여 애를 많이 태웠다. 그는 게을렀고 슬리퍼와 구멍난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머리는 길었고 목욕도 제대로 하지않아 몸에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김전무는 반드시 그를 참여시키기로 결심했다. 그가 협력사 프로그래머로서 일할 때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났다. 오기와 열정도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어려웠고 직원들은 남아돌았다. 그들은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지 못했고 급여는 김전무가 사비로 지급했다. V-프로젝트팀 킥오프 미팅에서 김전무는 술잔을 나누며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의 본사가 개발한 건축설계 S/W보다 더 훌륭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인 지식창업이 아닌 팀 단위의 지식창업이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여러분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자이며 세계 최고의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걸 6개월 안에 해내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지식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김전무는 간단하게 회식을 끝내고 V-프로젝트팀 별동대를 이끌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방 두 개를 빌려 하나는 개발실로 쓰고 하나는 숙소용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뒷골목 여관에서 시간도 잊고 개발에만 몰두했다.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모두들 개발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개발을 하다가 탁자위에서 그냥 잠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옷을 입은 채로 누웠다가 꿈속에서 나타난 프로그램 코드를 떠올리고는 일어나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팀원들은 직급도 없었고 서로 영문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김전무도 직급을 쓰지 않았다. 모두들 동료들이었다. 팀원들은 김전무를 윌든의 쏘로우라고 불렀다. 그가 회사에서 떨어져 은둔해 지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근무시간도 자율이었다.

자주 논쟁이 있었지만 그것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공격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쟁이었다. 논쟁후 목표가 결정이 되면 그 일을 끝낼 때까지 밤을 샜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공동목표는 확고했다.

프로그램 개발환경은 도스 환경에서 윈도우환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도스환경은 프로그램 명령을 문자형태로 입력하여 명령들을 하나씩 실행했다. 하지만 윈도우환경은 여러개로 연결된 명령을 한 개로 묶어 시스템 내부에서 연속적으로 처리했다.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지정된 폴더에 올려놓고 공유하여 사용했다. 상당부분 재개발이 필요 없었다. 개발자간 소통이 중요했다. 프로그램 개발은 효율적이었고 고객들이 사용하기에는 훨씬 편리하고 프로그램 처리속도도 빨랐다.

철근과 같은 보강재와 콘크리트의 함량, 그리고 여러 자재의 특성값을 입력하고 결과를 내어 서로 비교했다.

최적의 설계를 도안하는 프로그램은 하나하나 완성되어갔다. 입력된 정보를 근거로 건설원가도 도출되었다. 미국 본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처리 속도도 느리고 불편한 점도 많았다.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데는 유지보수업무처리에 대한 기록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만족도 조사와 고객의 의견을 상세하게 기록을 해놓아 프로그램을 테스트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로그램 개발중에 어려움도 많았다. 실체가 없는 싸움은 항상 실체를 만들어 놓고 그것과 싸워 극복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했다. 그것이 인간의 뇌가 진화한 이유고 인류가 발전한 이유다. 한명이 결국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김전무는 미국 컴퓨터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딸을 불러들여 V-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그녀는 마이컴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마이컴의 유지보수팀에서 근무한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최근의 기술 트렌드와 프로그래밍 기법도 알고 있었다. 문제들은 하나하나 해결되었다.

김전무는 완성되어가는 프로그램을 보고 가슴이 설렜다.

윈도우환경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은 복잡한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해 결과값을 산출해내고 그 값에 따라 설계도면들을 완성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프린트기가 제안서와 견적서들을 자동으로 쏟아낼 때는 가슴이 벅찼다.

이 시스템을 보면 고객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이것은 영업이 맛보지 못하는 엔지니어의 기쁨이었다. 고객에 대한 가치창출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것인지 그는 손수 체험했다. 마이컴에서 V-프로젝트는 비밀이었다. 사내에서 김전무가 회사를 포기하고 기도원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프로그램은 다소 미완성이었지만 테스트 할 기회가 우연히 주어졌다. 이탈한 고객인 방이사가 김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C화학회사 이사였다.

"김전무 이번에 우리가 생산시설을 증가 교체하면서 사일로의 원료 저장용량을 늘리게 됐는데 탱크를 지지해주는 버팀 구조물 4개 자체도 교체해야한다는 거예요. 그럼 탱크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할 동안 생산시설을 가동하지 못해요. 회사는 지금 고민입니다. 주문은 끝없이 밀려오고 납기는 정해져있는데…. 원래 일본 기술자들이 설계를 했는데 진단했더니 증가된 생산시설에 맞게 사일로 저장용량을 늘리려면 모두 교체하라는 겁니다."

김전무는 방이사로부터 설계당시의 사용된 자재들과 코크리트 함유랑, 철근보강제 등 자료들을 받았다.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 부분적으로 보강만 해도 기존 구조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리포트를 사장이 3명의 일본 기술자들에게 제시했다. 김전무팀과 그들은 하루종일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저녁 후에 회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식사테이블에 앉았을 때 일본기술자의 리더가 슬쩍 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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