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소설]지식창업이야기

 직장인들은 감원태풍에 무방비다. 이들은 대부분 실직상태로 있다가 치킨집이나 편의점, PC방, 셀프빨래방, 프랜차이즈, 음식점, 빵집이나 피자집을 개업한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없는 창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창업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권영석은 한성대 융복합 교양학부 교수. 한국지식창업연구소장, 성북구 시니어기술창업 센터장, 시니어창업교육총괄책임자 등을 역임했으며 벤처경영학 박사이다. [편집자 주]

그의 집을 간신히 찾았을 때 다소 놀랐다.

20평대의 허름한 빌라였다. 빌라라기보다는 연식이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다. 방이 3개였고 거실이 조금 좁았다. 옆에는 40층의 멋진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다. 연립주택은 중세의 성 옆에 있는 낡은 창고 같았다. 이 집에서 3명의 자녀들과 어머니와 이팀장, 아내 이렇게 6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이팀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달동네에 살고 있던 나는 이팀장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결혼도 못했고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끼니거리를 걱정하며 살았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며칠 후에 영업팀과 회계팀, 우리 팀의 구조조정 명단이 복도 게시판에 붙었다. 명단에는 이팀장과 신과장, 영희씨와 내가 나란히 올라있었다. 팀이 없어졌다. 2명은 영업 팀으로 옮겼다. 이팀장이 출근하지 않는 동안 신과장은 매일 출근했다. 그는 팀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커피를 마시자며 휴게실로 나를 불러냈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 평소 출퇴근하면서 장소를 봐둔 데가 있어.”

나는 30대 초반이고 신과장은 40대 초반이었다. 신문을 보면 삼사십 대에도 명예퇴직 대상자라는 신문기사가 많이 보도된다. 우리는 그 대상이 되었다. 중소기업, 대기업, 재벌그룹 할 것 없이 구조조정과 명퇴소식 기사가 넘쳐난다.

입사한지 4년밖에 안된 대리급도 명예퇴직 대상이다. 나는 10년은 이 직장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영자의 실책으로 그 기대는 사라졌다. 두 번째 직장생활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신과장은 그래도 10년은 넘겼다.

그가 치킨집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어도 10년 이상 다녔으면 동네골목에 치킨집은 차릴 수 있다. 나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뉴스는 퇴직자의 자살소식과 AI 조류독감 소식을 연신 보도했다.

이제 실직엔 나이가 없다. 모대기업에서 입사한지 1년도 안된 직원을 명퇴 대상에 포함시켰다가 여론 때문에 철회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신청자들은 대부분 퇴직했다. 기업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직장 다닐 때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모른다.

입사하자마자 지식창업계획을 수립해라. 3년을 준비한다면 재취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식창업은 은퇴가 없고 평생직장이다. 빨리 시작할수록 빨리 성공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내일 구조조정 당하는 심정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구조조정을 당한 나는 IT기업에 입사원서를 제출했지만 S/W개발 경력이 적고 나이가 많아 재취업이 어려웠다.

물론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팀 프로젝트로 진행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경력인정을 받지 못했다. 서류심사에 통과한 곳이 2-3곳 있었으나 면접에서 낙방했다.

3개월을 쉰 나는 취업이 안되자 동네 어른인 김씨를 따라다니며 노동일을 했다. 인맥이 넓은 오야붕 김씨는 공장을 짓는 일, 미군부대 막사 짓는 일, 우물을 파는 일이나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폐광이 있는 산에 가서 개미집같이 뚫린 동굴들을 따라 시커먼 금줄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수염을 깍지 않아 양볼옆으로는 구렛나루가 자랐고 얼굴은 구릿빛이 감돌았다. 팔뚝에서 굵은 핏줄들이 노동자들처럼 튀어나왔다.

그렇게 8개월을 보낸 후 운좋게도 B택배회사의 ERP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팀에 취업이 되었다. ERP개발 프로젝트는 1년간 진행되었고 밤낮으로 열심히 개발한 끝에 시스템 개발은 잘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개발요원이 필요없는 회사는 운영직원 2명만을 남긴 채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의 카드를 내밀었다. 팀장을 포함하여 3명이 사직을 당했다. 나도 대상자였다.

ERP시스템 개발 초기 회장이 팀장을 불러 프로젝트가 잘 끝나면 모든 그룹사의 전산실을 모아 그룹차원에서 IT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팀장은 설립될 IT기업의 이사로 갈 것이라고 믿었고 우리는 꿈에 부풀었다.

팀장은 나를 승진시켜 데려가겠다고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말했다. 

다시 실직을 당한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물류정보시스템 개발을 맡아 프로그램을 개발할 동안 전혀 쉬지를 못했다.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몇 개월 쉬면서 다시 직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Y재단법인의 기술직 팀장에 채용되었다.

회원으로 가입된 기업들의 제품에 바코드를 부여하고 이 코드를 추적하여 물류정보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업간 물류유통시스템 개발을 시범프로젝트로 추진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다시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S/W 개발 연구소,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쇼핑몰, 물류회사…. 이렇게 해서 11번을 퇴직하고 12번을 이직했다. 그 동안 창업에 관련된 책도 한권 냈다. 강연요청이 몰려들어 직장을 그만두었다.

강연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고 인세도 제법 들어왔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강연요청은 사라졌고 인세도 줄었다. 나는 실의에 빠졌다. 40대 초반에 피곤한 인생에 지쳐있었다. 더 이상 취업도 되지 않았다.

공원 가는 길에 은행나무 밑 공터에서 빨간 이층버스를 주차시켜놓고 누군가 고민상담을 했다. 어떤 고민이든 무료로 상담을 해준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혹시 내 고민도 풀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무심코 버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김전무를 만났다. 마이컴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하고 8년만이었다. 피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그는 폭언과 분노를 쏟아내는 폭군전무였다. 근무시절 그의 분노에 찬 언성이 사무실 두 개 층을 쩌렁쩌렁 울리면 주변은 순식간에 얼음장이 돼버렸다. 더군다니 현재 내 상황은 안 좋았다.

"월급 거렁뱅이같은 놈들, 이따위 일을 하면서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 처먹어!"

직장생활시절 그가 직원들을 향해 입버릇처럼 내뱉던 명언이었다. 결재판과 재떨이를 집어던지던 그가 떠올랐다. 순간 방어적이고 긴장되어 움찔거렸다. 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어서 오게. 과거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나보군.”

김전무는 금방 눈치 챘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끌어당겼다.

“긴장했군. 나는 바뀌었네. 옛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지 말고 지금의 나를 보게.”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이층버스를 갤러리처럼 끌고다니며 전국을 유람했다. 빨간 이층버스는 런던거리를 돌아다니던 명물버스였다.

“여기 앉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고민거리가 있나보군.”

그가 반갑게 맞아주어 긴장이 풀렸다. 

"사실 고민이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를 그만두고 해왔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다시 직장을 다니던 일, 직장상사와의 스트레스 관계,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썼던 일, 강연으로 조금은 유명해졌던 일과 고민거리를 얘기했다. 그는 다음 날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오후를 기다리기 까지 꽤나 길었다. 다시 그를 방문했다.

“자네 고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 미리 좌절하는 습관을 버리게. 과거의 기억으로 오늘을 좌절시키지 말고 오늘 정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행동하길 바라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어려웠다.

“자네는 지식창업을 했군. 지식창업에도 데스밸리(death valley)가 있네. 벤처기업은 창업 후 어려움을 겪는 시기로 3년 내외에 폐업할 수도 있다는 의미네. 하지만 지식창업은 위기가 더 빨리 오지. 대부분 위기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네. 절망, 좌절, 실패, 포기, 우유부단, 나약함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오지. 이러한 것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뇌에 다양한 사고의 뇌가 결합되어 스스로 만든걸세. 자네에겐 용기가 필요하네. 오늘 자네가 느낀 좌절이나 실패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온 거야. 나는 지금 변했는데도 자네가 나를 기억하고 피하려는 것처럼 그 두려움은 과거의 환상일세.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기억으로 미리 좌절을 해버리지. 시도해보지도 않고 미리 좌절하여 오늘 행동을 포기하는 습관을 만들지 말라는 거네. 과거를 기억하지 않을 용기, 그것이 자네에겐 필요하네. 우리 뇌가 생존으로부터 가치로의 전환이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게 지식창업의 데스밸리를 극복하는 길이네."

은행나무가 어둠속에서 버티고 서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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