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공이다 ]#1. 감염병 전담병원 의사들의 이야기

 

공공의대 설립은 방호복을 입고 더운 여름을 나고 있는 의료진 외면한 채 이루어지는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어 모두가 뉴노멀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병원도 새로운 국면을 맞아 호흡기 환자만 전담으로 보는 외래가 설치되고 코로나 확진자만 보는 병원이 생겨났습니다. 동시에 너무 빠른 변화로 병원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각 시·도는 코로나 환자의 전파 차단을 위해 하나의 병원을 완전히 비우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전파력이 크고 증상이 너무나 다양해 광범위한 선별검사를 통한 격리가 효과적이기 때문에 병원 또는 병동을 온전히 비워 코로나에 대처한 것은 칭찬할 일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발생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병원 간 의무기록이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에 다니고 있던 환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습니다. 코로나 전담병원에 근무하던 의료진 중 호흡기 감염과 관련되지 않은 의료진에 대한 대책도 없습니다. 비워진 병원에서 수련받던 전공의에 대한 대책도 없습니다. 비워지지 않은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열, 호흡기 증상 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수술, 시술, 입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공간 분리가 전혀 되지 않은 전국의 수많은 응급실은 발열, 호흡기 증상 환자를 받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정부는 당장 필요한 대책 대신 ‘공공 의대 설립’과 공공의료를 전담할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합니다. ‘의료진 덕분에’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의료를 위해,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의료계가 10년 이상 반대해온 법안을 이 기회에 들고나왔습니다.

민간 병원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현실에 공공의료가 무엇이고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의도 하지 않고 일단 의대 설립부터 추진하려고 합니다. 공공 의료는 기존의 병원과 어떤 차별점을 가집니까? 현재 설립되어 있는 공공병원의 역할이 다른 병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공의료의 정립과 현재 혼재되어있는 각 병원의 역할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제아무리 공공의료라도 기본적인 진료의 능력을 갖춘 의사가 종사하도록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공공의료밖에 모르는 의사를 키워내겠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의학교육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 속에 공공의료를 녹여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의사가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작금과 같은 사태에 의료계 전체가 함께 대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관심이 있는 학생이 공공의료에 헌신하고 몸담을 수 있는 일자리와 걸맞은 대우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사태에도 의사의 조언이 무시되고 행정적 판단, 정치적 판단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공공의료에 의사가 몰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현재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수련 받고 있는 전공의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국민 역시 추가적인 공공병원 설립에 우려를 표할 것이 분명합니다. 공공병원의 전공의는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시기에 감염병 차단을 위해 희생하며 경증 코로나 환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파 차단을 위해 입원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식이를 처방하는 것 외에 해 줄 것이 없는 환자들입니다. 더 심한 경우, 골절을 진단하고 수술을 해야 할 전공의가 차출되어 전공과와는 관련 없는 그들을 담당하거나 행정적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행정부처는 수련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들을 대신해 지난 7월 15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감염병 전담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수련의 질, 2차 파동에 대비해 대책 마련 여부 등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의 응답자가 전문의가 되는 최소 조건인 수련 이수 조건을 채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50% 이상에서 정상적인 수련을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응답했고 코로나 환자만 보는 응급실의 비율도 40%에 육박했습니다. 이런 곳의 전공의는 6개월가량을 코로나 폐렴 환자만 진료한 것입니다. 감염병 전담병원 전공의들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가능한 파견 개월 수를 초과해 자습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수련을 위한 파견 역시 급작스럽게 일어나 수련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병원이 일부 정상화 되었지만 코로나가 다시 유행했을 때 제대로 된 수련을 제공할 대안이 마련된 곳은 반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이 공공병원인 감염병 전담병원의 전공의는 지금 이 순간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한 분석과 대책 없이 공공병원을 설립한다면 부실 수련의 온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수련 외에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감염 전파를 막으려는 조치에 적정 수가가 매겨지지 않고, 감염의 우려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병원이 아닙니다. 공공의료를 정의하고 병원 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비슷한 제도인 ‘공중보건장학생 제도’가 있음에도 지원율이 50%를 밑돌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변화와 발전 없이, 최소한의 분석조차 없이 실패가 예견되는 정책에 또 한 번 강력히 반대합니다. 2020년 7월 28일 대한전공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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