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보)이석형 기자 = 보험사의 자살보험금 지급결정으로 인해 ‘자살공화국 1위’라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23일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재해사망특약의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 3곳에 대해 1~3개월의 영업 일부 정지(재해사망보장 신계약 판매정지)를 의결했다.

이에따라 각 보험사들은 그동안 지급하지 않았던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수익자를 찾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수익자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라며 참담했던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아픔’을 삼켜야 했고, 채무변재 등의 이유로 고액의 보험금 수령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생보사의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이 불러온 과거의 기억, 그리고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자살공화국 1위의 가슴아픈 사연들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A씨의 남편은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한 사람에겐 일반사망금만 나간다는 보험사의 통보에 A씨는 그런 줄만 알았다.

가장을 잃은 집안이 평온하기 힘들었다. A씨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남겨진 딸을 생각해서 버티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았다.

A씨가 보험사로부터 '상해가 인정돼 6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전화를 받은 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였다.

A씨는 보험사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우리는 고통스럽게 지내지 말라고 남긴 선물 같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A생보사는 자살사망자 B씨의 가족에게 우편물을 발송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보험금 수익자와 연결된 보험사는 "B씨의 자살이 상해로 인정돼 보험금을 더 지급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보험금 수익자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 살던 곳을 떠나 괴롭게 살아가는데 다시 악몽이 떠오를 것 같다"며 "제발 시간을 돌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C씨는 가족들과 함께 사업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버지 D씨는 그 책임감과 괴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채무를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한 생보사가 C씨에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게 됐다고 연락했지만 C씨는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채무조정 중인 C씨에게 목돈이 들어올 경우 이 보험금은 그대로 상환에 쓰여지기 때문이다. C씨는 보험금을 나중에 받겠다고 통보했다.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이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살로 사망한 유가족에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

몰라서 못받았고, 안줘서 못받았던 보험금을 뒤늦게 수령한 유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뒤늦은 지급에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1위 자살 공화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쓰라인 과거가 남긴 상처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미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거나 지급 중인 생보사들은 각 회사의 정책에 따라 보상팀, 혹은 재무설계사(FC) 등이 직접 고객을 찾았다.

생보사 관계자는 "자살보험금을 받아야 하는 대상에 포함되는지 모르는 고객도 많다"며 "안내 전화와 문자에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건조하게 보험금 전달 소식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보험금 수령자는 보험사에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잊고 있었던,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거액의 보상금이 들어왔음에 감격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족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 뜻하지 않은 거액을 받은 사실을 감추려는 사람도 존재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일부는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경우"라며 "수익자가 채무조정 중일 경우 수령을 미루거나 비밀로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거를 잊기 위해 연락처를 바꾸고 종적을 감춘 사람들도 많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족이 자살한 장소에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변의 시선과 위로도 싫어 어디로 떠났는지 알기 어려운 수익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알리안츠생명과 메트라이프생명 등 생보사들은 보험금을 90% 전달했다. 나머지 10%와는 연락이 닿지 않아 지급하지 못한 상태다.

ING생명 자살보험금 수익자 8%를 찾지 못하고 결국 공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쉽지 않다"며 "금융당국이 처음주터 지적했다면, 보험사가 처음부터 원만하게 처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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