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감소, 단가인하 압박, 최저임금 인상·주 52시간 등
"상황 심각해 폐업 고민 중"…근로자도 임금저하 불만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여건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제공.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여건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제공.

창원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 제조기업들의 경영여건이 심상찮다.

최근 일감 감소와 원청업체의 단가인하 압박, 중국 업체의 거센 도전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경영여건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경제단체의 경기전망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창원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말 창원지역 118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3분기(7~9월) 경기전망(BSI)조사를 한 결과, 기준치 100에 훨씬 못 미치는 '67.8'을 기록했고, 이는 5분기 연속 기준치를 밑도는 것이라고 지난 2일 발표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밑바닥 수준이라는 증거다. 특히 응답 업체들의 55.1%는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 '고용환경 변화'를 가장 큰 경영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창원상의는 앞서 창원지역 제조업체 112개사를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대응 방안'을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 시 받을 영향으로 '납품기일 준수 곤란'(36.8%), '총임금 저하에 따른 근로자 사기저하'(29.5%), '기업경쟁력 저하'(26.3%) 등 순으로 꼽았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응답 기업의 72%는 '근로자의 총임금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창원의 한 대기업은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관리직 사원들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 회사 한 직원은 "연봉제로 임금에 변동이 없으면서 여가가 늘어나 회식이 있어도 일찍 마치고 귀가해 가족들이 좋아한다"면서 "대부분 직장 동료들도 취미생활을 하는 등 만족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대기업 사내 협력사를 비롯해 중소 제조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대기업 사내 협력사인 A 중소기업 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원청 기업의 주 52시간 시행으로 우리도 작업 일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여건이 미비해 힘든 실정이다"라면서 "아는 어떤 사장은 폐업하고 싶어도 직원들 보기 미안해서 못했는데 이참에 폐업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용 플랜트를 만드는 B사 관계자는 "300인 미만 사업장이라 아직 주 52시간 근무제는 하지 않지만 2020년 1월 적용받게 되면 수주산업이라는 사업 특성상 납기가 쏠리는 일정이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이 많이 생겨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외주를 줄 수밖에 없고, 시급 현장 근로자들은 일이 줄어들면 임금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일본처럼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근로시간 합산제를 도입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 10명 이하인 기계부품 가공업체 C사 대표는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냥 눈만 뜨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청의 단가인하 요구는 거세지고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기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여기에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되면 납기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이어 "경기 악화에 따른 물량 감소, 원청의 단가인하 요구, 각종 부대 경비 상승, 실업난 속 구인난 등이 겹치면서 솔직히 넋을 놓고 있다.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가공업체 D사 대표는 "죽을 판이다. 공장 문 닫을 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요새 일감이 없다. 일감이 있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해도 사람을 더 늘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안 그러면 망한다. 대한민국 제조업 하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제 회식도 안 한다. 일도 없고 단가도 안 맞고, 소재비와 가공비 다 인상되어 남는 것이 없다"면서 "직원들도 불만이 많다. 향후 주 52시간이 적용되어 연장근로를 못 하게 되면 월급이 많이 준다'고 우려했다.

D사 대표는 이어 "올해 창원 시내에서 부도 난 곳이 많다. 얼마 전에는 중견기업도 문을 닫았다"면서 "3년 후인 2021년 7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주 52시간이 적용되면 아마 대한민국 공장 70%는 문을 닫을 것으로 본다. 나눠 먹는 것도 좋은데 요즘 자기 일당도 못 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서 차량 및 방산 부품을 생산하는 F사 대표는 "일이 많이 없다. 일이 없어 문 닫는 업체는 있어도 일이 느는 업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해라. 정부나 지자체장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살아나겠는가"라면서 "기업체가 잘 되고 경제가 살아나려면 국제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싸야 사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격은 세계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이지 우리가 더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없다. 인건비도 그렇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며 "대기업은 어쩔 수 없이 올려주지만, 중소기업은 누가 많이 주라고 해서 많이 줄 수 없다. 일이 없어서 사람이 남아돌면 인건비가 내려가고, 사람이 부족하면 인건비가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미래가 걱정이다.

대기업 사내협력사에 다니는 직원 G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대감이 컸는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서 오히려 급여가 줄어들었다. 동료들 역시 불만이 많다"면서 "향후 주 52시간 적용을 받으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벌써 걱정된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또 다른 중소기업체 30대 근로자 H씨는 "지금 우리 회사 일감은 어느 정도 있어 연장근로도 자주 하지만, 앞으로 주 52시간이 적용되면 임금 저하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그래서 조금 더 안정적인 회사로 이직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지금은 시행 초기라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지만, 도입 취지는 업무시간에 집중해 노동생산성을 올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갖게 하자는 것으로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어떤 회사에서는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판에 노조에서 억지로 연장근로를 요구했다는데, 이는 도입 취지가 아니다"면서 "시행 초기여서 그런지 중소기업체나 근로자들이 안 좋은 쪽으로만 얘기하고 악용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시간을 갖고 일하는 관행을 고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고 피력했다.

창원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근로자 소득 감소와 중소기업 경영 부담 등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용 시기의 차등 이외에도 '탄력 근로제' 허용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했다면 이와 상응하는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모든 노동량의 척도를 노동시간으로만 측정하는 것보다 생산성과 근로의 질을 함께 고려하는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기될 생산량 감소를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함으로써 기업 생산성을 합리화하는 노력도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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