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 김종필과 3김시대
[社說] 김종필과 3김시대
  • 논설실
  • 승인 2018.06.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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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으려 하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3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사진 운정재단 홈페이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3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사진 운정재단 홈페이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이른바 '3金시대'가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 정치사를 그대로 안고 있다. 처삼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5·16 쿠데타로 정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10·26 사태, 전두환의 12·12 쿠테타로 암울하고 긴 정치동면에 들어야 했다. 신군부는 3김 모두를 정치적 겨울로 인도했다. JP는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재산을 압류당했고 정치활동을 제한 받았다. YS는 내란 음모죄로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DJ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춘래는 진리라는 것을 확인하듯 3김도 긴 동면에서 깨어난다. 87년 6월민주화항쟁으로 획득한 대통령직선제로 인해 이들은 다시 정치전면에 등장하는데 우왕좌왕하다 잡은 고기를 남의 통에 담아주는 우를 범한다. 그해 대선에서 이들은 심각한 야권분열상을 보이며 정권도출에 실패한다. YS와 DJ는 단일화에 실패했고 그결과 신군부의 끝자락인 노태우정권의 탄생을 돕는데 그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3김시대는 화려하게 개화한다. 

이후 3김은 합종연횡(合縱連衡)의 전형을 보여준다. JP와 YS는 집권여당인 민정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만들었고, 1992년 YS는 대선후보로 나서 평화민주당 후보인 DJ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낙선한 DJ가 미국에 갔다 귀국해 1994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JP는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99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DJ와 자민련 총재이던 JP가 'DJP연합'이라는 신의수를 쓰면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JP는 DJ정부탄생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가 됐지만 그가 주장하던 내각제 개헌 약속이 이뤄지지 않자 2001년 DJP 연합을 파기한다. 3김 중 YS, DJ와 달리 JP는 권좌를 꿰차지 못했다. 자민련 총재로서 대권 도전의 꿈을 이어가나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하자 정계를 은퇴한다. 이후 DJ가 2009년 8월18일, YS는 2015년 11월22일 서거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23일 JP가 영욕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3김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3김을 떼고 한국정치사를 논할수 없다. 그만큼 3김은 영향력이 지대했고 또한 그에 버금가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특히 수차례의 합종연횡으로 인해 지역주의와 계파정치를 심화시켰다는 허물은 비껴갈수 없을 것이다. 그 중 JP는 5·16 쿠데타의 핵심이면서 합당 등으로 정치를 퇴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현대산업화에 이바지하며 여야 수평의 정권교체를 주도했는 공은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2018년 6월 23일. 그는 92세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발인을 앞두고 그가 2015년 부인 박영옥여사 장례식장에서 한 말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인 것 같아 부기한다.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으려 하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 이말이 그의 진심이든 아니든 정치를 하는 사람이 금과옥조로 삼을 것은 분명하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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