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은 저소득층 성인 및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의치보철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합천군 제공.
저소득층 성인 및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의치보철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합천군 제공.

인간이 태어나면 모두 모유나 우유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 젖을 떼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때 맞춰 이가 난다. 그이는 모두 빠지고 영구치가 난다. 영구치는 한번 빠지면 다시 나지 않는다.

영구치가 손상되면 보철을 해야 한다. 치아가 약간 깨졌다면 이를 때우는 수준에서 치료하지만 치아가 하나 또는 여러 개 빠졌을 때는 이를 대체하는 치료를 한다.   보철은 부분 틀니인 ‘가철성 국소 의치’, 완전 틀니인 ‘총의치’, ‘임플란트’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밖에 치아의 기능을 증진시키거나 변형하는 것은 보철치료라고 한다.

보철의 유래와 발명내역을 추적해 본다. 보철은 특정 발명인에 이루진 것이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의술이라기보다는 경험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로 나누어 그 발전사를 추적해 본다.
            
고대 치과 의술하면 단연 히포크라테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경험과 이론에 입각한 치과 의술을 성립시킨 의성이다.

고대 치아에 관한 규정은 기원전 2,10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고대 보철물은 모두 금으로 제조되었으며, 치료는 영구고정이 아니라 임시고정을 해두고 수시로 그 고정을 조절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중세에는 치과의학의 발달이 더디게 이루어 졌다. 치과의학을 포함한 의학이 주술과 공존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철물은 주로 황소의 뼈를 조각하여 제조하였으며, 이것을 금선 또는 은선을 활용하여 결손 치아와 결합시켰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어 상아와 하마의 치아 등이 이용되었고, 의치와 금관의 제조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중세는 치과의학이 더디게 발전하기는 했으나 여러 종류의 관련기구들이 발명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의술이 그렇듯이 치과의학의 보철의학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치과’라는 의학이 제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의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일본에 치과의학을 전한 사람은 미국인 윌리안이었고, 그는 1860년 일본 요꼬하마에 치과의원을 개업하였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개설된 치과의원은 1893년 일본인이 세운 것이고, 교육기관으로는 경성치과의학교(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의 전신)가 1922년에 수업 연한 3년으로 인가를 받고 개교하였다.

보철은 최근에는 임플란트(implant)가 주로 사용된다. 임플란트란 인공 치아 또는 제3의 치아라고 한다. 치아를 뽑은 자리에 잇몸 뼈를 보강한 뒤 턱뼈에 생체 친화적인 임플란트 본체를 심는 방식이다. 글 왕연중

 

저작권자 © 창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