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슨은 밴드 반창고 발명으로 부회장까지 승진했다. 
딕슨은 밴드 반창고 발명으로 부회장까지 승진했다. 

100년 가까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밴드 반창고는 세월이 흘려도 그 진가는 변함이 없다. 1999년에는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대 히트 상품’에 까지 선정되며 그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불변 불멸의 작은 거인 밴드 반창고의 발명이야기는 1920년으로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딕슨은 남달리 아내를 사랑하는 애처가이자 모범 가장이었다. 딕슨은 외과 치료용 테이프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존슨&존슨의 말단 사원이었다. 그러나 성실하기로 소문난 모범사원이었다.

딕슨의 발명은 오로지 아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취업 후 딕슨은 평소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형의 여인 조세핀을 만나 결혼해 뉴저지주에 둥지를 틀었다.

성실히 일하는 딕슨 덕분에 가정도 안정되었고, 집안에서는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내 조세핀의 덜렁거리는 행동과 형편없는 음식 솜씨였다. 조세핀의 음식 솜씨는 아예 전무였다. 그래도 딕슨은 항시 조세핀의 음식이 최고라고 허드레를 떨었고, 그들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덜렁거리는 행동은 고칠 수가 없었고, 그 행동은 음식을 만들 때마다 사고로 이어지곤 했다. 솜씨라고는 전무한 상태에서 음식을 요리하는데 덜렁거리기까지 하다 보니 음식을 요리할 때마다 불에 화상을 입고 칼과 가위에 상처를 입는 것은 예사가 되어 버렸다.

그때마다 딕슨은 정성스럽게 치료해 주었다. 치료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상처부위를 거즈로 덮은 다음 테이프로 감싸주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다 보니 별도로 거즈와 테이프를 구입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조세핀의 손은 성한 날이 없었다. 하루라도 상처를 입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딕슨의 출장이었다. 출장 중에 상처를 입으면 달려올 수도 없어 출장 전에는 반드시 요즘 1회용 반창고 모양의 반창고를 거즈와 테이프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것이 딕슨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준 것이다. 딕슨의 이 작은 아이디어가 회사에서 모집한 직무발명에 선정된 것이다.

회사는 서둘러 특허를 출원하고 생산에 들어갔다.

상표명은 ‘밴드 에이드=Band-Aid’. 초창기에는 일정한 양만큼 잘라서 쓰게 하는 방식이었으나, 통풍구가 첨가되고, 살균효과도 높이고, 위생적인 낱개 포장도 하는 등 점차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급기야 특허로 등록된 1회용 밴드 반창고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 것이다. 회사는 단숨에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딕슨은 엄청난 보상금과 함께 고속 승진의 기회까지 잡게 되었다. 한 마디로 회사도 딕슨도 대박이 터진 것이다. 밴드 반창고를 발명한 딕슨은 부회장까지 승진한 후 1957년 퇴직했다. 왕연중 한국발명과학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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