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대청마루에 앉아 빈대떡 부쳐 먹는 재미도 삶의 일락(一樂)이다. ‘규곤시의방’과 ‘규합총서’에 수록된 제법을 보면 지금처럼 반찬에 가까운 것이 아니고 전병의 일종이었다. 제사음식 설,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을  일컫는 빈자 떡,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 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빈자 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서울 광장시장에서 열린 ‘세계로 통하는 한국 전통시장 음식 체험 행사’에서 한 외국인이 빈대떡을 부치고 있다. 사진=시장경영진흥원 제공.
서울 광장시장에서 열린 ‘세계로 통하는 한국 전통시장 음식 체험 행사’에서 한 외국인이 빈대떡을 부치고 있다. 사진=시장경영진흥원 제공.

빈대떡은 김치 및 불고기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뽑은 인기음식 중의 하나다.

빈대떡의 어원은 빈자 떡, 본래는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괴는 음식으로 쓰던 것이 언재부터인가 하나의 독립된 음식이 되었다. 특히 크고 두툼한 평안도의  녹두빈대떡은 명물로 꼽힌다.

빈대떡은 맷돌에 간 녹두에 도라지,  고사리, 파,  김치, 고추, 고기 등을 넣어 팬에 얇게 부쳐낸 전 종류의 음식이다. 고기는 주로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빈대떡에는 우리민족의 애환이 담겨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나눠주었다고 한다. 1940년대 가수 故 한복남 선생의 데뷔 자작곡이자 대표작인 ‘빈대떡 신사’도 이를 대변하고 있다. 가사 한 대목을 살펴본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이 빈대떡이 명물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빈대떡은 밀가루로 하는 파전에 비해서 녹두를 갈아 만드는 이유로 단백질이 더 풍부하여 어린이들의 영양식은 물론 어른들의 술안주로도 일품이다.

빈대떡에 얽힌 유래는 한편의 전설 같다. 제사음식 설,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을  일컫는 빈자 떡,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 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빈자 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 등이다.

학자들은 빈대떡이라는 명칭은 처음에는 병자병이었는데, 이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빈자 떡이 되고, 다시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조선상식’에서는 빈자 떡의 어원이 중국음의 빙자에서 온듯하다고 하였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일러스트 김민재.
일러스트 김민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규곤시의방’과 ‘규합총서’에 수록된 빈대떡 제법을 보면 지금처럼 반찬에 가까운 것이 아니고 전병의 일종이었다.

‘규곤시의방’에서는 거피한 녹두를 가루내어 되직하게 반죽하여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놓고 그 위에 거피하여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그 위를 다시 녹두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하였고, ‘규합총서’에서는 같은 방법이지만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박아 꽃전모양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글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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