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단순한 꿈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자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고 근면과 성실로써 실력을 기름으로써 이뤄진다.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 집우(宇) 집주(宙)… 우리가 흔히 듣는 천자문의 첫 구절이다. 그런데 간단히 지나치기 쉬운 이 천자문의 뜻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땅(地)이 누렇다(黃)는 것은 이해가 가나 푸른(靑)하늘을 검다(玄)는 말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늘은 파랗게 보이므로 ‘검을 현’이 아니라 ‘푸를 靑’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구상에서 보는 대기권 내의 하늘은 공기의 영향으로 빛의 반사현상에 의해 푸르게 보이나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면 과연 하늘은 검지 않은가? 그런데 천자문이 만들어진 수천 년 전 고대에 어찌 대기권 밖 하늘의 실체를 보고 그 색깔이 검다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중국 당대의 명시인 이태백은 밤하늘의 달을 보고 ‘九萬里 長天…’이라 시작되는 시를 지은 적이 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계기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니 36만㎞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1리가 약 4㎞에 해당한다 하니 이태백이 달을 보고 노래한 구만리 장천은 정확히 36만㎞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몇 천 년 전의 이태백이 어찌 달까지의 거리를 그렇게도 정확히 맞추었는가? 고대 중국인들의 초능력적 현명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현명한 중국인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현인으로서 공자와 요순임금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요순임금과 공자는 한족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전인수격 자기도취 이론이 아니라 중국에서 천년 후까지 명성을 남길 대표적 학자로서 캉유웨이 임어당 등 5명의 권위 있는 학자들 모두가 비록 한족의 자존심에는 손상이가나 요순임금, 공자가 실은 동이족이었음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자에서 하늘은 天으로 표기한다. 天은 ‘하나’ 즉 ‘한 일자(一)’ 밑에 ‘큰 대(大)’자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우리말에서 하나님은 고어의 ‘ㅎ′ ㄴ′’는 ‘하ㄴ′ㄹ’ 즉 ‘하늘’과 ‘ㅎ′ㄴ′’ 즉 ‘하나’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것이므로 하늘에 계신 유일신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말의 ‘한’은 크다(大)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러 관점에서 우리말과 한자 간에 서로 일맥상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소설 「단(丹)」을 보면 도인의 눈으로 미래를 투시하면 한반도가 무혈로 통일되고 만주벌판 등 옛날 고구려의 고토가 회복된다고 한다. 흥미 본위의 소설에 나온 이야기라 하여 간단히 일축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만족의 우수성과 잠재력을 일깨우고 우리 모두가 큰 꿈과 포부를 가지는 하나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실력이 바탕 되지 않는 꿈은 허망에 그친다는 점이다. 우리의 큰 꿈은 단순한 꿈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자 맡은바 직분에 충실하고 근면과 성실로써 실력을 기르며 우리 모두 화합하고 굳게 단결하자. 

글 오병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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