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어릿광대도 되어보라
때로는 어릿광대도 되어보라
  • 왕연중
  • 승인 2018.05.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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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항상 집단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구성원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 더욱 관심을 쏟는 것이다.
때로는 어릿광대가 되어볼 필요도 있다. 김대균 제58호 줄타기예능 보유자의 줄광대 놀음. 사진 뉴시스.
집단속에서 인간은 때로는 어릿광대가 되어볼 필요도 있다. 김대균 제58호 줄타기예능 보유자의 줄광대 놀음. 사진 뉴시스.

인간은 집단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간혹 로빈슨 크루소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상황이 영원하리라는 가정을 붙이면 당장 마음을 돌이킬 것이다.

사나운 자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 이젠 인간의 피 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아 당연한 것으로 변한 것이다. 실제로 집단과 집단의식은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준다. 생산과 배분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최대한으로 보장한다. 이에 우리는 개성의 일정 부분을 대가로 지불하면서까지 집단을 영위하고, 집단의식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효율적이라 믿는 이 집단체제에도 맹점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구성원의 사고방식이 획일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양식을 관찰해보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수의 그릇된 판단에 동요하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아예 스스로의 판단은 하지 않은 채로 집단의 의향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대다수의 사람은 이 물음에 쉽게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사고방식에 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또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 횡단보도에 빨간 신호가 켜져 있어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게 된다. 모두가 움직이는데 혼자 멍하니 서있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항상 이런 집단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구성원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 더욱 관심을 쏟는 것이다.

만약 열사람 중에 여덟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포기한다. 또한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할 때는 그 문제에 대해 검토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생각은 옳게 마련이라는 착각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맹목적으로 집단의 결정에 따르는 몰가치 한 행동들이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타날 수 없다. 오히려 각 개인에게 내재되어있던 독창성마저 억제당할 우려가 있다.

집단적 사고는 독창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빠져 나오기 힘든 깊은 함정과 같은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빠져들지 모르며, 또 자신이 집단적 사고에 빠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순응성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지 방법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은 다른 말로 어릿광대의 방법이라 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아첨하는 간신들로부터 왕후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썼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어릿광대는 논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을 웃긴다. 그와 마찬가지로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다. 때론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혹은 ‘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가정 아래에서 우리는 상황을 재인식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릿광대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정과 가치를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그에게는 때론 원숭이의 손톱이 귀부인의 반지보다 귀하며, 고매한 철학보다는 한 마디 농담이 더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규칙 또한 그에게는 아무런 제약도 가할 수 없다. 식탁 위를 걸어 다니거나 꽃밭에 누워버리는 일 따위는 그의 일상 같은 것이다.

창조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릿광대의 이런 무질서한 가치관을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정을 뒤엎고 틀을 깨트리며, 평범함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발명 창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릿광대의 엉터리 같은 우스갯소리는 때로 집단사고에 찌든 우리를 깨우며, 우리가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한다. 남이 보여주는 것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찾아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고정되어 있는 가치는 없다. 세상은 쉬지 않고 변화하여 어제에는 가능하지 않던 일이 오늘엔 가능 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릿광대의 우스운 말 한마디가 1년 혹은 2년 후에는 실제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세의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하는 어릿광대의 몸짓에 폭소를 터트렸다. 그들은 인간이란 영원히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광대는 하늘은 날 수 있다는 어리석은 가정이 있었고, 그것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글 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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