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당신...."요즘, 잘 계시는지요?"

필자는 정말, 단도직입적이며, 그러나 다소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요즘, 잘 계시는 지요?"
 
홍제동에 사는 필자의 지인 金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의 통신회사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53세.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의재수끝에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가 공사(公社)라는 점에 부모님은 "아무렴, 공사면 공무원 맞잽이지..."라며 흐뭇해 하시며 친구분들께 자랑까지 하고 다니셨습니다. 3년째 연애중이던 애인의 어머니도 키도 작고 집안도 변변치 않은 金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김이 공기업 합격통지서를 내밀자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습니다. 김을 초대하고, 연신 지지고 볶고 먹이며, 심지어는 "그래, 키가 원래 이렇게 컸덩가?"라며 살껍데기가 온통 부풀어 오르기 짝이 없는 멘트를 날리며 권하고, 먹이고, 또 권하고...했습니다. 결국 그날 김과 애인의 어머니는 장서(丈壻)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어느날, 김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칼자루 앞에 서있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다소 호기로운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더니만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장모가 나를 버렸어." 그는 다시 호탕스럽게 크게 웃고는 내가 무어라 할 사이도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도 각별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장모 사위 관계인지라 의아해 했지만, 얼마 후 김의 친구로부터 내막을 알고는 저도 다리가 꺾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탄탄하기로 이름나 있던, 그래서 그의 장모가 그가 못생기고 집안도 변변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서의 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된 것입니다. 물론 명예퇴직이라는 별칭이 붙긴 했지만 결국은 구조조정을 당한 것이지요. 신촌에 있는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딸아이와 육군 6사단에 근무하고 있지만 다음 학기에는 복학해야 하는 큰 아들이 그가 책임져야 할 자식들이지요. 그날, 그가 웃어제끼던 호탕스런 웃음소리가 이렇게 애잔하게 다시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일자리찾기.jpg▲ ▲ 울산 북구 오토벨리 3층에서 북구청이 주최하고 북구인생이모작이음센터와 현대차, 금속노조울산지부가 공동 주관으로 '울산 북구 일자리·인생이모작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작년 4월 KT가 8300여명의 직원을 명예퇴직시켰습니다. 명예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51세, 평균 재직기간은 26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 40대가 31%, 50대가 69%를 차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50대가 무려 3분의 2가 넘는다는 얘기지요. 이는 단순한 수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오십대는 자칭타칭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 사회학적 용어속에 영어되어 침몰해 버린 세대가 바로 베이비부머이지요. KT 사태는 이들의 탈직장화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 준 것이지요. 물론 김은 그 무리속의 한 개체였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신설법인 수는 이를 잘 방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상반기 신설법인 수는 4만1485개로 이는 전년동기 3572개나 늘었습니다. 또한 지난 7월달에 설립한 법인 수는 8129개였습니다. 전월보다 996개가 늘었고 이는 1998년 1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신설법인 수가 8000개를 넘긴 것도 이번 7월이 처음입니다. 사실 신설법인 수는 점증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5~6천개에 달하던 것이 2012년 6천개, 2014년 7천개, 드디어 7월에는 8천개를 넘어선 것이지요. 베이비부머의 탈직장화가 2012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통계치이겠지요.

신설법인의 수는 곧 창업자의 숫자와 등가(等價)입니다. 창업이야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매우 비자발적이며 대대적인 사회현상과 맞물려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金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는 전혀 직장을 나가고 싶지 않았고, 또한 그로 인해 장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퇴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기업을 퇴사당한 그가 장모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가 현재 신설동의 어느 자그만 통닭집에서 초절임한 무와 콜라를 넣은 치킨 박스를 오토바이에 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창업이라는 거창한 서사에 묻혀 金과 같은 개인의 소사는 그냥 그렇게 조용히 묻혀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담담하게, 이 글을 써 내려 가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결정된 것이니까요. 金과 김의 동년배들이 치킨집을 한다는 것 말이에요. 아니면 피자집이던가, 아니면 선술집이던가....아니면 그 어떤 식당이든가...그리고 더 중대한 사실은 그들의 절반이 실패라는 수렁속에 빠진다는 것도 말이에요. 실제로 지난 7월 당좌거래를 당한 자영업자는 338명이었습니다. 그중 159명이 50대 창업자였습니다. 아픔은 여기서 더 아려옵니다. 전체 창업자의 47%가 이른바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50대였다는 사실 말이에요. 무려 말입니다.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 망했다는 것이 말이에요, 아프지만 너무나도 정확한, 그 지랄맞은 팩트가 말이에요.

저는 여기서, 더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준비없는 창업이 부른 피치못할 결과였느니, 아니면 정부가 베이비부머 창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 창업보육센터에서 이들의 창업서포트를 위한 시니어플라자를 만들었다느니, 베이비부머 창업자에게 우대금리를 적용한 창업자금을 정책적으로 마련했다느니....등등의 정말이지 귀신 씻나락 까먹는 말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저는 묻고 싶습니다. 벌써부터 마음이 쓰라려 오네요.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당신,

"오늘밤이나마, 마음 편히 잘 지내셨는지요?"
 
 
글/ 윤삼근. 창업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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