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추호칼럼 ]‘기(氣)철학’을 넘어서
[권추호칼럼 ]‘기(氣)철학’을 넘어서
  • 문이윤 기자
  • 승인 2017.12.12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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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추호

도올은 전천후다. 그래서 ‘기(氣)철학’에 대한 비평은 철학자만 아니라 신학자도 넘본다. 기(氣)철학이라는 레시피에 구미가 당기기 때문이다. 신학자 박삼영 교수의 도올 비평서인 「기(氣)철학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보듯이 기(氣)철학은 신학자의 입에도 어김없이 식탁의 간장처럼 오르내린다. 그것은 기(氣)철학이 철학과 신학을 잇는 가교적 기능의 철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삼영 교수의 도올 비평은 조금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왜냐하면 물론 기(氣)철학이 철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가교적인 성격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기(氣)철학은 이를 통해 새로운 고차원적 철학이 창출도어야 하는 당위론적 철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지어 놓은 희망의 이름, 즉 몸체도 없이 이름뿐인 기(氣)철학의 무엇을 비평하고자 하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氣)철학은 이름은 있으되 이론체계로서의 몸체는 아직 부분적이며 생성의 와중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보편적인 상식을 초월한 다른 세계에 대한 그런 제4의 철학임은 부정할 수 없다. 불교적 깨달음이라고 하기도 하며 기독교적 영성에 의한 거듭남이 초월적 중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종교적 진리의 ‘철학화’의 시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氣)철학은 일명 각(覺), 즉 깨달음의 학(學)이며 또는 인격, 성령의 학이다.

그의 새로운 철학에 대한 바람은 어설프지만 뭔가를 본 그런 사명감에 불타고 있는 선각자적 부르짖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도올의 기(氣)철학은 저급한 양비론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헤쳐 나오지 못하는 21C의 불쌍한 영혼들을 사유의 감옥에서 건져 내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애정의 산물이다. 그런 그의 의지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기(氣)철학은 기둥 하나에 의지해 지탱하고 있는 천막과 같으며 언어의 마술철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식론의 한 부분이다. 이것은 N. 하르트만이 「존재의 새로운 길」에서 설파한 칸트의 ‘선험적 인식론’을 뛰어넘은 ‘제4의 인식론’을 새롭게 구축해 보고자 하는 치열한 시도 같은 것이다.

도올이 희망하는 가상(假想)의 아들 기(氣)철학은 아직 연구 중인, 즉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의 철학이라고도 도올 스스로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평할 거리도 없는 기(氣)철학을 왜 굳이 비평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 권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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