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보)소재윤 기자 =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탈취가 여전하고 대응방안 역시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8월 중소하도급업체(수급사업자)를 대상으로 '기술탈취 실태 파악을 위한 심층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술탈취가 여전하고 대응방안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단가조정, 품질관리, 사후관리 등 다양한 명목으로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수급사업자는 단가인하, 물량감소, 거래단절 등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계약 시점에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재계약 시 원사업자가 기술자료를 요구해 넘겼다는 A사 대표는 "(그 이후) 재계약하면서 인하율 공개거부로 단가가 꽤 많이 인하됐는데, 인하된 단가를 이전 계약 기간에 소급 적용해서 돈을 반환하라고 했다"면서 "완전히 단가후려치기가 목적이었고, 몇 억 손해를 봤다"고 전했다.

B사 대표는 "재계약 할 때 사후관리를 이유로 대가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제품 설계도면을 요구한다"면서 "거절하면 불이익이 있을까봐 거절 못하고 제공했는데 결국 거래하면서 아파트 한 채 값 정도 손해보고 작년에 거래가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계도면을 만드는데 엄청난 기술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제작하는데 15일 정도 걸리고, 기술적인 평가액은 회사 외형의 8~10%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재계약 시 원사업자가 단가를 조정한다며 원가절감공정 관련 기술자료를 요구했다는 C사 관리자는 "끝까지 기술자료는 주지 않았고, 단가가 낮아도 물량이 많아 거래했는데, 그러다 결국 매출 대비 약 10% 정도 손실을 봐서 부당하다고 항의했더니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다른 협력업체로 유출시켜 공급망을 이원화한 이후 거래가 중단되는 사례도 있었다. 품질개선 의뢰가 들어와 자체기술 적용 제품을 만들어 원사업자의 테스트를 거쳤다는 D사 대표는 "원사업자 쪽에서는 상당한 원가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등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는데, 결국 납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현재 우리 핵심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원사업자의 다른 협력업체를 통해 납품되고 있다"고 전했다.

E사 대표는 "원사업자의 상위 업체가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원사업자가 제품관리 때문에 필요하다는 경우도 있다"면서 "생산현장을 둘러보자고 해서 보여줬는데 그때 우리 현장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중국 업체에 넘긴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직접 내재화하거나 계열사로 유출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원사업자 요청에 따라 여러 기술자료들을 제공했다는 F사 임원은 "원사업자가 우리 제품과 매우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중기중앙회 측은 하도급 불공정행위와 마찬가지로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수급사업자 대부분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사업자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술탈취 행위에도 수급사업자들은 신고조차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송을 진행 중인 C사 임원은 "대형로펌을 낀 원사업자를 상대로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원사업자 쪽에서 오히려 기술탈취로 신고당하면 법적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실제 수급사업자 대상 기술탈취가 여전하지만 공정위 신고 건은 많지 않고, 신고가 들어가더라도 피해사실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2010년 기술탈취 조항 신설 이후 공정위 신고 건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23건에 불과하고, 이중 8건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거나 기술자료에 해당되지 않아 사건이 종결처리됐다.

중기중앙회는 이 조사도 실태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조사는 기술자료를 요구 받은 경험이 있는 117개 수급사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했지만 22곳만 조사표를 회신했고, 인터뷰(방문 또는 전화)에 응한 업체는 단 9곳에 불과했다. 9곳 조차도 자세한 설명은 거부해 기술탈취 실태파악이 쉽지 않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원사업자가 적절한 보상을 하고 기술을 가져다 쓰면 전혀 문제될 일이 없는데 우리 기술을 자기들 원가절감이나 연구실적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요구·유용하는 행위는 하도급 4대 불공정행위에 포함돼 수급사업자가 입은 피해금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법위반금액 비율 산정이 곤란한 행위에 부과되는 정액과징금도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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