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이씨, 현대차-경북대 대상으로 기술탈취 관련 소송 승리했으나 대법까지 7년 걸려...중소기업 감당못해

(창업일보)윤배근 기자 =  중소기업 비제이씨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기업의 기술탈취와 관련한 국민청원을 올렸다. 

생물정화기술 전문업체 비제이씨는 지난 달 27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7년간 소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사기관이 조사하게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중소기업 비제이씨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기업의 기술탈취와 관련한 국민청원을 올렸다.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c)창업일보.

대기업·대형로펌을 상대로 대법원까지의 긴 소송기간을 버티기 힘든 중소기업을 위해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해 초기에 조사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청원의 골자다. 현재 기술탈취 피해는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 사건으로 분류된다. 비제이씨 측은 “기술탈취는 절도·상해와 같은 형사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청원 마감일은 한 달 뒤인 오는 27일이고 이날(4일) 오후 2시 기준으로 2812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청원 마감시까지 20만 명 이상 청원에 참여하면 각 부처 장관과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 등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이 답변을 내놔야 한다.

비제이씨는 현대차와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승리한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같은 청원글을 올리게 된 것은 현대차가 ‘재심 청구’ 카드를 꺼내들며 시간 끌기 작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과 맞물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혀 향후 사태가 관심이다.

비제이씨는 2004년부터 자동차 페인트 도장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유기화합물·악취를 정화하는 신기술을 개발해 현대차 울산공장에 납품해 온 업체다. 2006년 8월에는 현대차와 공동으로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지만 2015년 1월 현대차는 경북대와 공동으로 새로운 미생물제 기술을 개발했다며 특허를 출원한 후 비제이씨에 납품계약 중단을 통보했다.

이후 비제이씨는 2016년 4월 현대차·경북대를 상대로 ‘특허등록무효심판청구’를 제기해 지난달 21일 특허등록 무효 결정을 받아냈다. 특허심판원은 “현대차와 경북대가 공동으로 등록한 특허의 10개 항 모두에 진보성이 없으며, 특허구성과 균주를 비롯한 특허의 효과까지 기존 특허와 동일하다”고 심결했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박정 의원 등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참여연대, 민변인생경제위원회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 마련·제도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c)창업일보.

중소기업이 승리한 이례적인 결과다.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특허무효심판에서 중소기업 패소율은 작년 71.9%, 올해 1~7월은 93.3%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혀 장기전을 예고했다. 특허무효 사건은 특허심판원(1심)→특허법원(2심)→대법원(최종심) 순으로 진행된다. 비제이씨 측은 대법원 판결까지 7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기부의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도 현대차를 상대로 비제이씨에 3억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현대차는 거부했다.

문제는 영세한 중소기업 입장에선 이런 싸움을 길게 이끌어 갈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는 “2015년 5월부터 31개월째인데, 한달에 1억씩만 잡아도 이달까지 31억을 손해보는 것”이라며 “다른 것 모두 제외하더라도 순수하게 미생물제 매출만 해도 손해가 31억이 넘는다”고 전했다.

이어 최 대표는 “민사소송은 이기면 손해배상을 받는데, 특허 소송은 아무리 돈을 들여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면서 “현대차처럼 2~3심 끌고 가면 중소기업들이 버텨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비제이씨가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까지 올리게 된 배경이다.

한편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는 물론 취임 이후인 지난달 23일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기술탈취 문제에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홍 장관은 당시 구체적인 해법으로 ‘기술임치제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기술자료를 전문기관에 보관해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기술임치제도’는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이다. 현재 대기업과 기술탈취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 관계자는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조정이라는 성격 자체가 한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립이 안 되는 것”이라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제도들이 각 부처에 흩어져 있고, 각자 하는 걸 어떤 식으로 묶어서 하느냐를 고민 중”이라며 “저희 쪽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부처 간에 얘기를 해서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비제이씨는 오는 5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기술탈취 피해 해결을 위한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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