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무점포 사업인 자판기 창업은 불황에도 강한 몇 안 되는 아이템으로 늘 손꼽힌다. 적은 창업 비용으로 목 좋은 장소에 설치해 정기적으로 관리만 해주면 쏠쏠한 수익이 나기 때문에 부업을 원하는 주부나 투잡스를 희망하는 직장인들이 가장 쉽게 눈을 돌리는 사업 중 하나다.

실제로 자판기 사업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얼핏 시작부터가 아주 쉬워 보인다. 점포를 따로 얻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점이다. 1000만원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 창업이 가능한 게 사실이다. 또 본사(공급처)가 알아서 설치 장소도 섭외한다. 그뿐인가. 각종 원부자재 등도 일괄로 처리해준다. 이보다 편한 장사가 또 있으려나.

 

이런 이유 때문일까. 국내 자판기 산업은 꾸준한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보급된 자판기 대수는 2005년 말 현재 10 만3863대로 전년대비 135%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스낵과 음료 등을 파는 멀티자판기의 경우 지난해보다 무려 650%나 증가한 200여대가 팔려 최근 가장 각광 받고 있는 품목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지하철 1~4호선 과자자판기를 설치한 롯데제과의 경우 한 달 동안 20만개 이상 제품을 팔아 1억원 이상의 매출실 적을 올렸다. 그만큼 시장성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요즘 자판기 시장은 원조 격인 커피, 탄산 등 음료가 강세를 끄는 가운데 아이스크 림, 껌, 풍선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군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또한 디카, 폰카 인화 및 스티커사진 자판기 등 엔터테인먼트 자판기가 젊은 소비계층과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각종 방송, 신문 등에 수많은 형태의 자판기 사업 광고가 매일매일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정말 별별 희한한 자판기가 다 있다. 계란자판기, 끓인라 면자판기, 상품권교환자판기 등은 물론이고 노래방에 설치하는 조명자판기, 드럼자 판기, 멀티자판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중에서도 최근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자판기는 ‘책자동판매기’다.

 

올 6월부터 선보일 예정인 책자동판매기는 문고판(4×6)사이즈 크기에 64, 96쪽 두 종류의 24종의 서적을 진열할 수 있다. 가격은 2000원(64쪽)과 3000원(96쪽)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 현금은 물론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고, 미리보기 기능이 있어 구입 전 최대 1분까지 책의 목차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자판기 산업은 자판기 선진국인 일본과 비교했을 때 아직 걸음마 단계 에 불과하다.

 

자판기 왕국으로 통하는 일본은 인구 46명 당 자판기가 1대일 정도로 자판기 사업 이 활성화됐다. 일본 자판기 협회에 따르면 일본에 보급된 자판기 종류만 700만대 가 넘고 판매 매출액도 3조원에 이른다. 이미 안정된 수익 사업으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국내 시장은 신중한 시장조사와 준비가 없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자판기 시장도 중고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레몬’이 현존한다. 미국에서는 겉은 멀 쩡한데 속이 엉망인 중고차를 일컬어서 ‘레몬’이라고 한다. 국내 자판기시장도 그렇다. 왜 그럴까?

 

일단 정말 자판기 창업을 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정 보를 얻기 무척 힘들다. ‘월 몇 백만원 이상 벌 수 있다’는 공급자 주장과 달리 실제 창업자의 월 수입은 공급자 주장의 10% 수준이라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기계 속성상 신상품 등장과 유행 예측이 어렵다는 점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부 추기는 요인이다.

 

생산자인 공급자 정보 우위 현상이 강해 창업자 입장에서는 소위 ‘정보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월 3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스넥자판기 프랜차이즈업 에 뛰어든 정모씨는 1대에 1000만원하는 자판기를 3대나 구입해 설치했지만 월 수 입은 고작 30만원이고 고장도 잦아 얼굴 펼 날이 없다. 게다가 ‘본사가 슬그머니 문을 닫아버려 보상 받을 길도 막막하다’는 식의 스토리가 끊이질 않고 생산된다.

 

아이디어는 그럴싸한데 소비자 반응이 신통치 않아 실패하는 자판기도 꽤 된다. 노 래방 고객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등장한 드럼자판기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엔 누구든지 아이디어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줬다. 어차피 노래방 이용료(시간당) 1만원을 지불했는데 추가적으로 10분에 1000원 정도 비용으로 멋진 드럼주자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품성이나 시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 했다. 그러나 연주의 단조로움이 문제가 됐다. 날이 지나갈수록 가치가 퇴색됐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다.

 

직접 조리된 봉지라면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라면즉석자판기 는 기능성의 차별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선 참혹할 정도로 실패했다. ‘집에서 끓이는 맛’을 표방했지만 위생적인 부분이 제대로 확 인 안 된 자판기라면을 소비자들은 선택하지 않았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식 은 라면자판기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컵라면을 사먹겠다는 쪽으로 저울 추를 기울게 했다.

 

팝콘자판기는 좀 다른 이유로 실패한 경우다. 이 자판기는 영화관 사업 성장과 더 불어 시장성을 확인해줬다. 단점이 있다면 특수한 공간에서만 소비가 이뤄진다는 것. 일정한 장소를 벗어나면 이상하리만치 팔리지 않는다.

 

또 불과 몇 년 전에 크게 유행을 주도했던 스티커사진자판기 시대가 바야흐로 지나 가고, 지금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인화해 주는 자판기 시대로 넘어왔 다. 그 판도가 눈 깜짝할 새 바뀌어 버렸다. 바로 이 점이 자판기사업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위험 요인이다.

 

지금까지만의 결과를 놓고 봤을 땐 어쩌면 소비자가 자판기 이용을 허락하는 수준 은 커피 자판기나 음료수 자판기까지가 한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판기를 이용할 때는 동전을 주로 쓴다. 지폐를 쓰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진다. 따라서 1000원 미만 가격인 커피나 음료수 자판기는 가능하지만, 수천원 대 가격의 상품엔 자판기라는 채널이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상훈 작은가게창업연구소장. 자료원 매경이코노미

 

Tip ▶ 자판기 사업 시작할 때의 유의점

 

1. 누구를 타깃으로 만들어진 아이템인가?

2. 자판기를 설치할 장소 섭외가 얼마나 수월한가?

3. 자판기를 이용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만족도는 무엇인가?

4. 관리에 들어가는 노동력은 얼마나 드나?

5. 대당 투자비용 회수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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