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악(俗惡)하면서 사이비라는 오명을 달고 다닌 키치(kitsch) 그림은 그러나 태생부터 비즈니스를 잉태한 유망 사업아이템이었다. 19세기말 유럽전역이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중산층이 늘기 시작했고 돈이 많은 이들은 귀족문화를 항상 동경했다. 그중의 하나가 그림이었는데 이들은 그럴 듯한 그림을 사서 집이나 상점에 달아두길 좋아했다. 원작이 아니면서도 원작과 구별이 가지 않는 그림. 그것이 바로 '그럴 듯한' 가짜그림  키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구매한 사람들은 그럭저럭 만족 했고, 당시의 모작전문가나 판매업자는 사업상 한목잡았다.

 

이발소그림은 한국식 키치다. 싸구려 그림을 통칭하지만 이발소그림전문가인 박석우씨는 좀더 근사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이발소그림을  이발소나 식당, 다방, 가정집, 관공서, 사무실 등에 걸려 있는 상화(商畵) 로 분류한다. 다소 상업적인 의도로 그려지고 또한 대중적인수요를 바탕으로 유통되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가격또한 서민적이다. 그래서 부담없이 사서 현관이나 사무실 벽에 걸어 놓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한 자리를 차지하게끔 한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이발소그림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그림의 효용가치를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 "불황이요? 우린 그런 것 모릅니다"  한 신문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뱉은 이발소그림 판매업자의 말이다. 그는 용산 삼각지에 아트샵을 갖고 있다. 그의 아트샵에서 판매하는 그림은 월 4천~5천점에 달한다. 매출액만도 1억원이 넘는다. 삼각지는 20여개의 표구화랑업체가 몰려있는 우리나라 이발소 그림의 원천제공소이다. 일부표구업체의 경우 그림액자를 생산하는 공장도 따로 갖고 있다. 지방의 영세화랑이나 아파트 지역을 돌면서 그림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거의 전부가 여기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 업종에 관계없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곳의 매출액은 최근 3~4년간 오히려 20%정도 늘었다.

 

IMF를 거치면서 고가 미술품에 대한 수요는 극히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저가 상품인 이발소그림의 수요가 늘어난 턱이다. 이발소 그림의 가격대는 대략 5만~20만원선. 최근에는 사람들의 그림보는 눈이 높아져 5만원짜리의 저급한 그림보다는 10만~20만원 정도의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수요가 많다보니 이발소그림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의 월수익은 2천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웬만한 작가의 수익을 능가하는 것이다.

 

<>과거 이발소그림의 주요 소재는 대중성과 그들의 소원을 담았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등 유명화가의 모작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시킨의 시구절도 많이 삽입했다. 백두산이나 호랑이 그림도 있고 어미돼지에 7~8마리의 새끼돼지가 올망졸망 붙어서 젖을 빠는 복돼지 그림도 이발소그림의 단골 소재이다. 상단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글귀가 붙을 수도 있고 희망이나 사랑, 성공 등의 문구가 새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발소그림이라 불리는 것들은 이렇지 않다. 대신 유명화가의 그림을 모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천경자나 이대원, 김창열같은 명망있는 작가의 그림을 베끼는 경우가 허다한데 물방울작가로 알려진 김창열의 경우 모작작가만 1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모두들 유명작가의 고가 미술품을 갖고 싶어하는 19세기 유럽 중산층의 심리와 다를 바 없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모태로 한다면 무엇이든 비즈니스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이 복돼지의 다산성과 재물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싼 그림으로 대체해주거나  호당 1천만원을 호가하는 천경자의 인물 석채(石彩)화를 수십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면그 자체만으로 거래장터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발소 그림산업이 호황인 것은 이러한 속사정이 엇물려 있다.

 

 

윤삼근 cp@saupite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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