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무가 내게 남긴 것은 손톱만한 USB였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파일에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대부분은 김전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기형태로 쓴 내용이었다.그는 회사를 그만 둔 후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치고 6개월을 쉰 후에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파산할 경우 그의 손실이 제일 컸다. 주주들이 그를 불러들였다. 그들의 희망은 회사를 빨리 정리해서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그 책임을 대주주인 그에게 맡겼다.그가
사례1 《아이의 언어능력》의 장재진작가 ;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기 위한 첫번째 사례로 《아이의 언어능력》의 장재진 작가를 들 수 있다.《아이의 언어능력》의 저자이자 언어치료사인 장재진작가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았다. 그녀는 공무원이었다.첫아이가 10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의 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아빠, 엄마’라는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10개월 정도 된 다른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대며 작고 귀여운 입술로 엄마 목소리를 흉내 냈다. 처음 아빠, 엄마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는 황
김전무와의 다섯 번째 만남은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매일 은행나무 옆 공터에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지식창업을 책 쓰기로만 생각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식창업이란 개념도 없었다.늦가을 오후였다.공원을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김전무와의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공터로 향했다. 빨간 이층버스가 서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궁금했다. 아무 말없이 떠날 리가 없었다. 전화를 했지만 고객의 사정으로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울려 나왔다. 페이스
인터넷을 검색하여 30여개의 출판사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하지만 원고를 보낸 후 대부분의 출판사로부터 아래와 같은 거절답변을 받기 일쑤였다.안녕하십니까? 저희 출판사를 믿고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데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선생님이 주신 원고를 읽고 다방면의 가능성을 검토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저희의 노하우와 경험이 부족한 탓에 책을 기대하시는 만큼 충실하게 출간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따라서, 저희가 출판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락을 드리게 되었으니 부디 너그
김전무는 창밖의 어둠속을 잠시 응시했다."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네. 오래간만에 찾은 캠퍼스가 아름다웠지""대학시절의 추억들이 인문관 잔디밭에서, 원형의 노천극장에서, 노란 개나리와 진달래꽃이 대학본부앞 사자상 주위에 만발했네. 대학병원 후문 뒤의 포장마차에 들렀지. 돈도 없이 막걸리를 마시고는 학생증을 여러 번 맡긴 추억이 있었네""항상 웃음으로 반겨주던 주인 아주머니도 있었지. 하지만 그 포장마차들, 풍경들은 모두 사라졌어. 높은 빌딩들과 상가건물들로 재개발되었지. 모든 건 순간순간 변하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오후 몸이 좋지 않은 스티브잡스는 자택 뒤뜰에 앉아 죽음에 대해 숙고했다.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분홍, 하얀, 빨간 코스모스 꽃들 사이로 빨간 장미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했다. 거의 40년 전에 인도에서 경험한 것들과 불교공부, 환생과 영적 초월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어 갔다. 다음은 윌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의 마지막 부분이다.“내 인생의 대부분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왔습니다. 죽은 후에도 나는 무엇인가 살아남는다고 믿고 싶어요.
“자네들이 나간 후에 회사는 더 힘들어 졌네. 고객들은 이탈하고 나는 기업을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지""그게 가능했고 나만이 할 수 있다고 했어. 오히려 내 능력을 멋지게 보여주리라고 한껏 들떠있었네. 성공에 집착했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더욱 성공에 집착했지. 직원들에게 하루에도 수십번 화를 내며 그들을 ‘머저리들’이라고 몰아부쳤지. 침낭을 가져다놓고 사무실에서 잤네. 그들의 실수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네. 집에도 여러 날을 못 갔어. 아내는 연락도 하지 않았네. 이미 회사가 어려워 사무실에서 밤
"사실 고민이 있습니다."그동안 회사를 그만두고 해왔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다시 직장을 다니던 일, 직장상사와의 스트레스 관계,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썼던 일, 강연으로 조금은 유명해졌던 일과 고민거리를 얘기했다. 그는 다음 날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오후를 기다리기 까지 꽤나 길었다. 다시 그를 방문했다.“자네 고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 미리 좌절하는 습관을 버리게. 과거의 기억으로 오늘을 좌절시키지 말고 오늘 정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행동하길 바라네.”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사람은 누구나 다 성격유형별로 기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평생 직장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한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을 가난한 직장생활로 마무리 한다.이 두려움은 그들이 자유롭고 부자가 될 기회를 가로막는다. 때때로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할 때 자신의 기본적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이때 이 두려움에 맞서 용감해 지거나 그
구조조정을 당한 나는 IT기업에 입사원서를 제출했지만 S/W개발 경력이 적고 나이가 많아 재취업이 어려웠다.물론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팀 프로젝트로 진행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경력인정을 받지 못했다. 서류심사에 통과한 곳이 2-3곳 있었으나 면접에서 낙방했다.3개월을 쉰 나는 취업이 안되자 동네 어른인 김씨를 따라다니며 노동일을 했다. 인맥이 넓은 오야붕 김씨는 공장을 짓는 일, 미군부대 막사 짓는 일, 우물을 파는 일이나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폐광이 있는 산에 가서 개미집같이 뚫린 동굴들을 따라 시커먼 금줄
“저는 경험도, 자본도 없어요. 현재 사업 아이템도 없고요. 무얼 해야 할 지 망막한 심정으로 왔습니다. 취업도 안 되고…”시니어창업센터를 내방한 40대 중반의 여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절망적으로 말했다.“지식이나 직장생활 경험이 없어도 지식창업이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같이 찾아보도록 합시다.”1시간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많은 것을 말씀해 주시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업 아이템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는 상대방의 경험이나 지식, 관심거리와 취미 등을 찾아야 한다. 즉 자기분석부터 진행하면서 자신의 가
20평대의 허름한 빌라였다.빌라라기보다는 연식이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다. 방이 3개였고 거실이 조금 좁았다. 옆에는 40층의 멋진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다. 연립주택은 중세의 성 옆에 있는 낡은 창고 같았다. 이 집에서 3명의 자녀들과 어머니와 이팀장, 아내 이렇게 6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이팀장은 출근하지 않았다.달동네에 살고 있던 나는 이팀장보다도 훨씬 열악했다.결혼도 못했고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끼니거리를 걱정하며 살았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며칠 후에 영업팀과 회계팀, 우리 팀의 구조조정 명단이 복도 게시판에 붙